소통의 새로운 형식   







김선정
김홍석의 개인전 «평범한 이방인(Ordinary Strangers)»을 준비하며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 인터뷰는 전시에서 소개될 <사람 객관적_평범한 예술에 대해> 프로젝트 및 이 프로젝트와 연관이 있는 김홍석의 이전 작업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사람 객관적>은 전시장에 오브제로 된 작품이 놓이는 대신 작품을 설명하는 사람들(여기서는 배우들)이 전시장에 서 있거나 앉아 있다가 관객에게 오브제 없는 작품에 대해 설명하는 작업이다. 보통 전시장에는 작업이 놓여 있고 그 작업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해설사나 도슨트가 있는데, 김홍석의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오브제 없이 작업을 설명해주는 사람들로만 전시장을 구성하고 있다. 김홍석과는 그가 독일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90년대 중반에 다른 작가들과 같이 만나게 되었고, 90년대 후반부터 여러 전시를 함께 하였다. 그룹전으로는 서울과 베이징에서 열린 _환타지아(Fantasia)전(2001,2002), (2002)과, 도쿄에서 열린 «Under Construction»전(2002),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Secret beyond the door»전(2005), 그리고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린 김소라, 김홍석 2인전 «ANTARTICA»전(2004)과 «Somewhere in Time»전(2006)등을 함께했다. 다음의 인터뷰는 2011년 3월 5일에 진행된 김홍석과의 인터뷰를 정리한 것이다.

김선정: 이번 프로젝트의 작품 이름이 <사람 객관적-평범한 예술에 대해>인데, ‘사람 객관적’은 어떤 의미인가요?

김홍석: 제 작품 중에 <카메라 특정적_공공의 공백(Camera Specific-Public Blank)>(2010)과 관련된 작업입니다. ‘장소 특정성(site-specificity)’이라는 개념은 작품이 어디에 놓이는지에 따라 작품의 성격이 바뀐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장소성이 중요하다는 말인데, 장소가 아니어도 작품의 성격을 좌우하는 요소는 많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카탈로그는 전시와 작품, 그리고 작가를 대표하는 것 이상의 기능을 합니다. 예전에는 전시라는 장소가 중요했는데, 이젠 전시 못지않게 카탈로그라는 매체가 중요한 위상을 갖게 된거죠. 그래서 미술가들은 전시와 동일한 힘으로 카탈로그를 대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카탈로그에 전시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는 작가들도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전시보다는 카탈로그를 접할 기회가 훨씬 많기 때문에 작품이 기록되는 상황에 대해 무언가 언급하고 싶었던 겁니다. 특히 카탈로그 안에 있는 사진들 중에는 작품이 생성되는 과정을 찍은 사진들이 많은데, 퍼포먼스와 같이 행위 중심의 작품들에는 그 사진이 행위를 증거하기 때문에 다수의 사진들이 사용됩니다. 그 사진들을 보다 보면 작품이 진행된 상황도 파악이 되고, 작품의 내용도 이해할 수 있게 되는데, 그 사진의 정체가 뭐냐는 것이 저를 혼란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작품인가? 아닌가? 퍼포먼스가 작품 그 자체라면 행위를 벌인 장소와 등장하는 사람들이 주체가 될 겁니다. 미술가들 대부분은 마치 증거처럼 퍼포먼스를 사진이나 비디오로 기록하고, 이러한 기록이 작품을 대표하게 되죠. 그런데 그 기록을 보면 사진을 찍은 사람이 따로 있고, 사진의 소유권이 따로 있고, 카탈로그의 지적 소유권도 따로 있습니다. 제가 제 작품을 기록한 사진을 보고 너무 근사한 나머지 사진 작품으로 전환해도 될까요? 혹은 그 사진을 카탈로그에 싣기 위해 다시 인쇄를 하게 되면, 그게 카탈로그용 사진인지 작품을 대표하는 이미지인지, 그 정체성이 매우 혼란스러워져요. 그런 이유로 해서 <카메라 특정적>은 영상에 등장하는 사람과 행위를 주체로 설정하기보다는 오히려 영상 매체 자체가 주인공이 되게 한 작품입니다. 퍼포먼스를 영상으로 기록한 것이 아니라 기록한 영상을 퍼포먼스와 다르게 위치시킨 거죠. 영상을 위해 퍼포먼스를 했다고 할까? 이렇게 되면 사람들의 퍼포먼스가 원본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덜 중요해지고, 반대로 기록하는 도구 즉 카메라가 중요해집니다. 카메라로 찍는 일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에 여기에 필요한 사람들을 초대하게 된 거죠. 카메라에 찍히기 위해 사람들이 등장하는 것인 만큼, 사실은 안 해도 되는 일을 만들어내는 셈인 거죠. 그러나 사람을 대상화하여 카메라로 촬영하는 것은 그 등장인물과 작품을 진행하는 미술가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표현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람 객관적>이란 작품에서는 저와 초대된 사람들 간의 관계를 부각시키고, 초대된 사람들을 관람자들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게 하여 상호소통적인 구조를 주인공으로 만들고자 한 것이지요. 이것은 영화의 영상과 비슷합니다만 영화적 맥락이 아니기 때문에 영화도 아니고 홈비디오도 아닌, 그것들 사이 어딘가에 있어도 되고 아니기도 한 것이 된 겁니다.
미술 작품에 개입하는 사람들 중, 작품에 직접 등장하여 같이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객체화되거나 소재화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니까 이들은 장소나 카메라의 경우처럼 특정화(specific)될 수가 없는 거죠. 자신이 주체가 되어 소재화된 사람들을 미술가는 어떻게든 조정하려 하지만 그게 안 된다는 겁니다. 이 작품은 사람들을 객체화시키고자 하는 의지로 시작하여, 미술에 등장하는 사람들을 주체화시킨다는 의미를 나타나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 객관적>이란 제목을 쓰게 된 거죠.

<사람 객관적> 프로젝트는 사람이 중요하고 사람에 의한 프로젝트라고 설명을 해주셨는데, 이 프로젝트를 하시게 된 계기가 있나요?

이 작업은 대학에서 진행한 한 수업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퍼포먼스를 주제로 하는 수업에서 미술사에 나타난 다양한 형태의 퍼포먼스를 설명하고, 마지막으로는 행동주의 미술과 관객참여적 미술에 대해 소개했습니다. 아마 그런 이유에서였는지 많은 수의 학생들이 여러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 무언가의 이야기를 만들어냈습니다.
그 중 기억에 남는 작품은 이주노동자의 고향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학생들은 이주노동자를 만나는 데서부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겨우 만나 비디오로 촬영하는 것에 대한 동의를 얻는 데에도 큰 어려움이 있었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비디오를 완성하였고, 그들의 담담한 고향 이야기가 담긴 아름다운 비디오는 수업을 통해 모든 학생들에게 공개되었습니다. 작품을 관람하던 우리 모두는 이상하게 구사된 한국어에 대해 웃으며, 그들의 내러티브 구조에 빠져들게 되었죠. 그런데 아름다운 풍경에도 불구하고 여기에는 많은 문제가 숨어 있습니다.
일단 학생들은 대상인 사람들을 목적에 부합하는 존재로 설정했습니다. 자신들이 정한 매뉴얼에 따라 움직여주어야 하고 간혹 발생되는 우연적 요소라든가 그들의 진솔한 모습은 작품의 내용을 풍부하게 해줄 양념 정도밖에 되지 못한 것이죠. 여기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아무리 학생들의 순수한 동기와 정치적 올바름이 있다고 하더라도 인격을 소재화하여 사용한 혐의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결과만 놓고 봤을 때는 학생들이 이주노동자들과 소통을 하여 좋은 담론을 이끌어냈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예술적 실천으로서만 완결되어야 함을 몰랐던 것입니다. 미술이기 때문에 무언가 표현으로 남겨야겠다는 통념이 작용한 거지요. 학생들의 작품이 아니더라도 ‘사회에 유용함을 주는 미술’이라던가, ‘사회에 봉사하고자 하는 미술’에서도 이와 유사한 문제는 계속 발견됩니다.
제가 앨런 캐프로(Allan Kaprow)의 작품을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학생들에게 소감을 물었는데 학생들은 올바른 태도가 좋았다, 남과 더불어서 작품을 제작하는 것이 좋았다고 합니다. 적절한 대답이지만, 그보다 더 정확하게 알아야 될 부분들은 관용이라는 의미가 무엇인지, 남과 더불어 행동하는 것은 무엇인지, 타인을 돕고자 하는 마음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면서 실천의 방법을 신중히 적용해야 한다는 겁니다. 남을 돕는다는 것은 순수한 동기지만 그 동기에 대해 냉정하게 봐야 한다는 거죠. 남을 돕는다는 것은 실제로는 자기를 주체로 설정하고 상대편 사람들을 자기 쪽으로 끌어들이는 것과 같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가난이나 무지로부터 벗어나도록 돕는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상대방을 우리의 영역에 이속(혹은 소속)시켜 계급의 평등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착각과 다름없습니다. 물론 순수한 마음에 대해서 비판하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는 자기 쪽으로 끌어들이려는 이 시도 자체가 상대방을 하위 개체로 보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거기에서부터 벌써 모순이 시작되는 것이죠. 그래서 이 사람들과 어떻게 소통할지 좀 더 냉정하게 조직화해서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수에 의해 매우 체계적으로 진행된다면 이러한 윤리적 문제에 대해 이성적으로 접근할 수도 있을 겁니다. 미술이란 영역에서 ‘다수의 사람들이 참여하는 미술’의 형태에는 윤리적 정치성이 요구됩니다. 또한 미술가들이 빈번히 사용하는 사람들에 대한 표현에는 인격 사용이라는 문제도 있습니다. 이러한 점이 <사람 객관적>이라는 작품의 동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 객관적> 프로젝트는 배우를 고용해서 작가가 쓴 스크립트를 배우에게 주고, 배우는 그것을 자신이 이해한 대로 관객에게 이야기하는 작업이잖아요. 이 작업은 이전의 번역 작업, 김수영의 시를 다른 언어로 번역하는 작업 등과도 연관이 많은 것 같아요.

번역이라는 건 태생적으로 소통의 열망에 대한 게 아닐까 싶어요. 외국어를 어느 나라의 특정 언어로 바꾸는 것 외에도 ‘번역(translation)’에는 여러 의미가 있을 겁니다. 그런데 번역이 생기기 위해서는 번역을 열망하는 주체가 있어야 해요. 번역은 상대를 알고자 함이고 자신의 변화를 원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번역은 결여를 인정하는 자들의 행위인 셈입니다. 사실 결여가 아닌데도 말이죠.

이해할 수 없거나 읽을 수 없는 사람에게 번역이 필요하죠.

그렇죠. 이해는 하고 싶은데 못하기 때문에 번역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원본을 번역자에게 던지는 사람, 다시 말하면 텍스트를 소유한 사람은 자신의 텍스트가 번역되는 과정을 볼 때 그것이 재밋거리가 되겠지만, 번역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과정과 결과가 매우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우리는 근대화 과정에서 항상 번역을 원하는 주체이면서 동시에 번역이 되기를 바라는 주체였어요. 외국 것을 보면 쉽게 반하고, 어디에서 그 음악을 들어봤다, 그 영화를 봤다 같은 이야기들을 하죠. 그게 뭐냐면 자기 쪽으로의 번역 과정을 통해서 무언가를, 이를테면 정보를 주입하면서 자율적으로 그쪽으로 편입하려고 하는 거죠. 자기가 열망하는 공동체 안에 편입되고 싶어하는 거예요. 반대로, 열망의 주체였던 우리가 타인들에게 우리의 문화를 보여주고 인정받고 싶어하는 열망도 있어요. 70년대에 한국의 어린 아이들이 외국에 나가서 부채춤을 추고 외국인들에게 박수 받는 장면을 뉴스에서 본 적이 있어요. 일단 춤이라 하면 비언어적이니 타인들에게 소개하기 쉬운 문화였을 겁니다. 그래서 이런 것부터 소개하고자 했고, 나아가 우리의 언어로 쓰여진 문학을 다른 언어로 번역하여 외국에 소개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제게도 이런 유형의 욕망이 있는 것 같아요. 정확하게 지적할 수는 없지만 어딘가에 무언가 나보다 상대적으로 좋은 게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인정하는 것 같아요.
제가 다른 사람들의 욕망을 파악할 수는 없겠지만 사람들은 그런 상승에 관련된 욕망을 갖고 있어요. 조금 적절치 못한 비유를 하자면, 파리에서 유학한 미술가는 어떻게 하면 내 작업에서 프랑스적인 냄새가 날까 하고, 한국에서 공부한 미술가와는 뭔가 다른 차이를 두고 싶어하죠. 이 사람들이 자기가 번역한 것을 갖고 또 하나의 새로운 번역을 만드는 거예요. 그런데 그렇게 번역된 것을 우리가 보게 될 때는 한국에서는 소통되지만 정작 프랑스에서는 통하지 않는 경우가 벌어지죠. 완벽하게 번역된 게 아니기 때문에 프랑스에서는 읽힐 수가 없는 겁니다. 말하자면 번역이란 아래쪽에 있는 사람들의 열망에 다름 아닌 거예요. 번역은 오독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모순을 이미 가지고 있는 거죠. 그러나 번역을 무시할 수는 없어요. 이것은 사라질 수 없기 때문이죠. 전 세계가 글로벌화되고 심지어 하나의 언어로 통일된다고 하더라도 번역은 항상 있을 겁니다. 제가 배우들과 같이 작업하게 된 것은 이들이 생산해내는 해석 때문이었습니다. 작가로 대표되는 저와 작품을 해독하는 참여자 사이의 내용, 그리고 작품의 참여자가 수용자인 관람자에게 전달하는 내용은 우리의 번역의 역사와 같은 맥락으로 작용합니다. 아마도 한국에서는 한국인에 의해 쓰여진 세계사라든가 번역극, 오페라, 또는 노벨 문학상을 탄 소설을 번역한 책 등이 이러한 예가 될 겁니다. 번역은 진짜를 위장한 가면이 아니라 우리에겐 익숙치 않지만 이미 존재하는 소통의 새로운 모습입니다.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배우들이 어려움을 느끼지는 않았나요?

일상 속에서 번역이 흔하게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인지하지 못해서 그럴 겁니다. 제 경험을 예로 들면, 초등학교 선생님들의 인솔로 학생들이 미술관에 온 것을 본 적이 있어요. 어느 그림 앞에서 선생님이 설명을 하고 있었는데, 그 그림은 키치한 추상표현주의 같은 그림이었어요.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학생들은 그 이미지가 미술이라는 것을 이미 사회적으로 교육받아 알고 있었지만, 그 그림을 해독하거나 공감하기 어려운 나머지 알고 싶어서 미술관에 온 것이고, 그리고 그것이 뭔지는 잘은 모르지만 굉장히 심오할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더라는 겁니다. 우리가 그냥 흔하게 말하는 ‘보는 대로 해석하시면 돼요’라는 것이 오히려 사람들한테는 굉장한 부담이 된다는 걸 알게 되었죠. 선생님은 그림에 내포된 내용 이상의 설명을 했습니다. 그리고 듣는 학생들에게는 충분히 만족할 만한 했구요.
<사람 객관적>에서 저와 배우들은 유사한 소통 과정을 가졌습니다. 배우들은 자신이 교육받은 대로 자신에게 할당된 대본을 숙지하면서 자신만의 캐릭터가 있기를 바랬습니다. 아울러 그 캐릭터를 통해 자신을 부각시키고 싶어한다는 걸 알게 되었죠. 그런데 저와의 대화를 통해 기존의 연극과 너무나도 다른 것을 알게 된 후로 그들은 자신의 상상 가능한 영역에서 미술에서의 퍼포먼스의 이미지를 떠올린 거죠. 그리고 그들이 보여준 행동은 매우 기이하게 전개되었습니다. 흔한 이야기꾼이 아니라 추상적인 행위로 가득찬 기호와 같은 것이죠. 그들은 자신들이 학습한 대로 미술 속의 퍼포먼스를 상상한 것이고, 그것이 저와 소통하는 데 있어 중요한 요소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저는 이들에게 제가 바라는 의도를 다시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정확히 소통되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모습은 공동체가 제공한 학습이 빚은 일종의 번역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공동체가 진정으로 원했던 학습의 결과가 아닐 겁니다. 그래서 개개인에 의해 해석되고 번역된 이러한 모호한 경계가 새로운 소통의 가능성이라 보는 거죠.

그렇죠. 연극 배우들에게는 자기들이 하고 싶은 건 연극인 거고. 이 작업에서 배우들이 하고 싶은 건 무엇일까요? 그들의 욕망은?

아마도 다른 이와의 차이를 보이려는 욕망이겠죠. 다른 연기자들과 다른 모습으로 비추어지는 것. 이것은 표현에 대한 당연하고 자연스런 반응입니다. 자신의 연기가 연기로 보여지고 싶은 것도, 그 연기가 연기처럼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러운 것도, 더 나아가 기존의 연기와는 또 다른 해석이 나오는 것, 이런 것 모두가 차이를 만들고자 하는 열망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번역의 범주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이러한 열망은 뜨거운 온도만 감지될 뿐 진정한 차이를 발생시킬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차이는 번역이 발생하기 이전 단계이자 번역 과정 그 자체입니다. 새로운 차이를 제공하고자 한다면, 굉장한 자기수련이 필요할 겁니다. 이러한 수련 중에는 자신을 다시 자가복제하는 일도 포함되고 번역하고자 하는 열망의 주체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도 필요합니다.

초창기부터 퍼포먼스를 많이 하셨잖아요. 금산갤러리에서의 첫 번째 개인전(1998)에서는 직접 하기도 했고요. 그 다음에도 퍼포먼스 혹은 퍼포먼스적인 요소가 들어간 작품들이 계속 나왔는데, 이번 퍼포먼스가 이전 퍼포먼스와 다른 차이점이 있을까요?

금산갤러리 같은 경우는, 제가 이미 해왔던 퍼포먼스 중 하나였는데 한국에서 처음 했던 거죠.그때 했던 퍼포먼스를 돌아보면, 아직 제가 퍼포먼스의 개념을 세분화시키지 못한 단계였어요. 퍼포먼스가 일종의 표현의 수단이라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거죠. 미술 교육을 통해 퍼포먼스가 어떻게 시작되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것이 나에게 어떻게 적용되는지에 대해심사숙고하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퍼포먼스는 저의 표현 방식 중 하나다라는 의미밖에 없었던 거죠.

표현 수단이 여러 개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로 사용하셨다는 거죠

그렇죠. 그때 저의 퍼포먼스는 하루 동안 시작되고 끝나는 것이었는데, 그 과정을 자연스럽게 비디오와 사진으로 기록했습니다. 당시엔 퍼포먼스가 저의 표현의 궁극점이었고, 기록은 후차적이었던 겁니다.그런데 저의 실제 퍼포먼스를 본 사람들보다 비디오와 사진으로 보게 되는 사람이 더 많다는 걸 알게 되었죠. 퍼포먼스 현장에 있던 관람자와 나중에 비디오로 보는 관람자는 다른 거죠.

그게 미술에서의 퍼포먼스가 연극이나 공연과는 다른 점인 것 같아요.

현장에 있었던 게 중요하니까 기록은 엄연히 다른 콘텍스트로 자리하게 되죠. 결국 저의 미술 표현의 결과는 퍼포먼스인가 비디오인가라는 의문에 봉착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심정적으로는 첫 번째했던 퍼포먼스가 중요하죠. 그런데도 왜 비디오를 만들까, 못 본 사람들을 위해서 서비스 차원으로 만드는 건가, 아니면 나중에라도 불후의 명작이 될 지 모르는 나의 퍼포먼스를 후대에 남겨야지 하는 욕망 때문에 그런 건가? 지금의 퍼포먼스는 그런 질문에서 비롯된 차이의 의미를 심각하게 고려하고 진행된 것입니다. 이전에 가졌던 일련의 퍼포먼스들과는 달리 지금의 퍼포먼스는 훨씬 더 많은 검증을 통해달라진 것 같아요.검증이라는 게 뭐냐면 사람들을 만나면서 생겨나는 너무나 많은 의문들인 거죠. 제가 직접 연기하는 퍼포먼스가 아닌 것들, 그러니까 제가 기획을 하고 참여자들이 행하는 퍼포먼스와 기획한 미술가보다 참여자들이 주체가 되어 관람객들과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퍼포먼스들은 새롭게 발생한 차이입니다. 물론 미술가 스스로 행하는 퍼포먼스나 다른 참여자들과 함께 특정한 시나리오대로 움직이는 것은 전통적 방식과 다릅니다. 이런 유형의 퍼포먼스는 연극과 다른 것이죠. 브레히트(Bertolt Brecht)의 연극처럼 관객으로부터 사고의 참여를 유도하는 것도 사실은 연극 본래의 카테고리에서 크게 벗어난 것은 아닙니다. 미술에서 관객의 참여로 새로운 이야기가 창출되는 것은 이미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고, 그러한 유형의 퍼포먼스는 연극과 완전히 다른 영역에 위치합니다. 또한 제가 기획한 퍼포먼스는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상황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연극적인 요소는 모두 다 갖추었으면서도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르게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열린 결말은 저의 퍼포먼스에 참여한 연기자들에게 아주 당황스런 요소로 작용했습니다. 이번 작품에서 시작은 저의 스크립트입니다. 이 텍스트는 연기자들에게 문장 하나 틀리지 않게 숙지되어 그것을 통해 연기로 표현되는 것이 전혀 아닙니다. 저는 그 텍스트를 통해 연기자의 마음에 무언가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이것을 통해 서로 대화가 생겨나길 기대했던 겁니다. 그래서 연기자들이 관람자들과 만나 자신이 들은 이야기를 그들에게 전해주면서 또 다른 이야기가 발생되는 것을 목적으로 한 겁니다. 따라서 연출이 개입되지 않은 연극적인 퍼포먼스에서 중간자의 역할을 하는 연기자들의 입장은 매우 중요합니다.
결국 이들이 이 작품의 주인공이 되는 것입니다. 이 작품에서는 미술가의 개념이 적극적으로 개입되어 주된 임무를 행사할 확률이 아주 낮습니다. 다시 말하면, 제가 이 작품에 대해 지적 소유권을 갖기는 하지만 그 결말에 대해 작가 자신도 알 수 없는 혼돈의 텍스트인 셈이죠. 물론 이 작품의 주인공인 연기자들도 그 결말을 알 수 없습니다.

그렇게 보면, 미술과 퍼포먼스는 굉장히 다른 거네요? 미술은 작가가 생각하는 개념이 오브제로서 충분히 드러난다고 생각하는 거잖아요.

오브제로서의 미술과 사람들에 의한 미술은 모두 대상을 만난다는 점에 있어 동일합니다. 그러나 저는 미술가가 오브제를 만날 때 적용하는 윤리성과 사람들에게 적용하는 윤리적 태도는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사람들이 개입하는 미술에서 중간자 역할을 하는 참여자의 비중은 매우 큽니다. 그래서 참여자를 어떤 대상으로 두느냐가 제일 중요해요. 참여자에게 주체성을 주면 줄수록 참여자의 지적 소유권이 실제로 커진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윤리적 정당성이 커진다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에서 여러 개의 질문이 파생되는데요. 첫 번째는 어떻게 참여자를 구하는지, 두 번째는 참여자를 뽑는 방법에 관한 것인데, 오디션을 하는 건지 아니면 본인이 먼저 거기에 맞는 사람을 찾아서 접촉하는 건지 궁금해요.

참여자와의 만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저의 정치적 태도라 생각합니다. 두 가지로 크게 나눌 수 있는데, 내 작품을 고스란히 대변해줄 사람, 즉 내가 아이디어를 냈는데 그걸 그대로 100% 따라 해줄 사람을 찾느냐, 아니면 나의 정치성에서 비롯되어 평범한 사람들과 함께 무언가를 같이 꾸며보겠느냐는 것을 말하죠. 이때의 평범한 사람들이란 동지라고 해도 될 것 같고, 그러니까 정치적 입장이 맞는 사람들을 찾아야 하겠지요. 예를 들어 이슬람의 차도르라는 의복이 내포한 여성차별과 사회적 위치에 대한 재조정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미술가가 있습니다. 이 미술가는 이슬람 사회에 직접 방문하여 차도르의 여인들과 함께 저항적 행동을 전개했고, 이러한 모든 과정을 영상과 사진에 담아 미술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다른 지역에 공개하여 담론을 유발하고 자신의 정치적 태도를 명확히 하였습니다. 또 다른 퍼포먼스가 있습니다. 미국에서 성폭행으로 한 여성이 사망한 사고가 언론을 통해 전국에 알려집니다. 한 미술가가 남성에 의한 폭력을 고발하고 법과 제도의 개선이 필요함을 공론화하고자 합니다. 여러 여성단체와 함께 시 정부 건물 앞에서 퍼포먼스를 진행합니다. 이러한 퍼포먼스는 다시 언론을 통해 전국에 알려집니다. 두 가지 모두 행동을 중심으로 전개된 미술입니다. 그리고 미술가의 의도에 따라 발생한 행동들입니다. 모두 정치적으로 올바른 태도를 목적으로 설정하였고, 이에 공감하는 이들과 함께 행동을 전개했습니다.
하나는 비디오라는 매체를 통해 미술로 만든 것이고 다른 하나는 행동 그 자체를 미술로 만든 것입니다. 후자의 경우는 담론을 유발하여 강연, 토론, 저술 등으로 다시 공론화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전자의 경우에서 비디오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주인공으로 자리할 수 없습니다. 그 비디오는 결국 미술가가 만들어낸 고유한 영역으로 표시됩니다. 여기에는 실제 비디오에 참여한 사람들이 객체화되고 소재화됨으로써 결국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는 사람들이 되어버립니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는 퍼포먼스에 참여한 사람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을 보고 미술이라고 얘기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정치적 시민단체가 행한 퍼포먼스와 차이를 제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행동주의 미술이 갖는 윤리적 올바름은 매우 타당하지만, 결국 참여한 사람들이 주체이다 보니 제안을 한 미술가의 입장은 협소해지는 것이죠.
저는 평등한 조건에서 사람들을 초대하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래서 내린 결정이 정치성을 내포하지 않은 텍스트로부터 시작해서, 사람들이 개입되지만 그들이 객체화되지 않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의 이야기를 만들었고, 그 이야기를 설명해줄 사람들을 찾게 된 거죠. 주위의 평범한 사람들이 이 작품에 가장 적임자들이었는데, 불행히도 제가 제공한 스크립트를 보고는 저와 작업할 의사를 순식간에 포기해버렸습니다. 저의 텍스트가 재미있어 충분히 이해할 만한 것이라면, 그 내용이 원본과 다르게 아주 짧아지든 내용이 변하든 저는 상관 없다고 말했는데도 모두들 부담스러워했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문화적 차이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프로젝트를 다른 지역에서 시도한다면 제가 바라던 대로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진행될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런 이유로 저는 연기자들을 섭외했습니다. 이미 알고 지내던 분들이 많아서 섭외는 어렵지 않았습니다.

티노 세갈(Tino Sehgal)의 경우, 퍼포먼스라고 하지 않고 ‘시추에이션(situation)’이라고 부르고, 미술 작업으로 그런 것(여기서는 이해를 돕기 위해 퍼포먼스)들을 판매하잖아요. 김홍석의 퍼포먼스 작품도 판매가 가능한 건가요? 아니면 이벤트처럼 한 번 일시적으로 하고 끝나는 건가요? 관객참여 프로젝트들 중에 여러 종류가 있잖아요. 앨런 캐프로같은 경우도 관객이 참여하는 이벤트고. 김홍석의 작품을 미술관에서 구입할 수 있나요? 그런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앨런 캐프로나 수잔 레이시(Suzanne Lacy) 같은 작가들은 어떻게 작품을 판매하는지 잘 모르겠네요. 그런데 그런 유사한 작업을 하시는 분들은 이런 점 때문에 사진을 많이 남겨요. 저의 <사람 객관적>을 미술관에서 구입하고자 한다면, 행위가 아니라 저의 스크립트를 구입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 작품에서 보게 되는 행위 혹은 시추에이션을 미술관에서 구입하기를 원한다면, 스크립트에서 비롯된 모든 행위가 포함되니 그것도 가능할 겁니다. 이때는 행위에 대한 구체적 인스트럭션이 그것을 대신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인스트럭션은 글이나 드로잉과 같은 이미지로 표현될 거라 여겨지는데, 구매자에게 정확히 그 의미가 전달될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거래는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퍼포먼스 자체로는 컬렉션이 불가능한 건가요? 티노 세갈의 작업은 공연의 형태를 띠고, 그것의 컬렉션은 개념 미술가의 인스트럭션을 컬렉션하는 것처럼 가능한데요.

티노 세갈은 미술에서의 소유권이라는 개념에 대해 굉장히 획기적인 제안을 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티노 세갈은 새로운 차이의 방법을 제시한 사람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소통의 가능성은 사실 근본적인 것인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망각하고 살아온 것이라 생각합니다. 근본주의자적 태도로 보면 티노 세갈의 방식이 절대 새롭거나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퍼포머티브_performative_한 작품이 사진이나 동영상을 통해 기록되어 이것이 자신의 작품을 대표한다는 태도를 거부한 것입니다. 이러한 거부의 몸짓이 실제 그 작품을 살아 있게 합니다. 너무나 당연해 보이는 이러한 태도를 우리는 잊고 살아왔는데, 그건 작품에 대한 보존 방식을 현대의 시각으로만 한정지었기 때문일 겁니다. 구전도 보존은 가능합니다. 구전을 녹음하여 기록하고자 하는 우리들의 욕망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단지 녹음된 구전이 실재를 대표하는 것이 아닌 만큼, 기록은 작가 스스로에게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에 의해 기록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때 그 작품의 소유권에 대한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데, 이건 새로운 지적 소유권에 대한 해석에 의해서만 해결되겠죠. 그건 저의 몫도 아닐뿐더러 자세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 정도로만 언급하겠습니다.
퍼포먼스가 하나의 독립된 미술의 표현 형태임은 자명합니다. 이러한 무형의 작품을 소유하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물론 소유라기보다는 다수의 사람들에게 작품의 내포된 뜻을 공유하고자 하는 의지에 가까울 것입니다. 미술관의 경우, 대중을 위해 미술사적 가치가 있는 작품을 소유하려고 하는데, 이것은 대중들에게 그 가치와 의미를 공유하고자 하는 의무 때문에 그럴 겁니다. 물론 현재까지는 사진이나 비디오의 기록을 소장한다는 뜻입니다. 작품 구입이라는 것은 작품 생산자와 구매자가 있다는 것을 뜻하고, 작품은 그것을 기획, 제작한 작가의 것으로 대표되는 것을 말합니다. 만약 퍼포먼스에서 기획한 미술가보다 참여한 사람의 행동에 큰 비중이 있다고 해서 그 작품의 소유권이 참여자에게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미술관은 참여자로부터 무형의 작품을 구입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미술관의 작품 구매라는 선한 목적이 있음에도 퍼포먼스를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사진을 구매하는 것입니다. 미술가들 또한 미술관의 요청에 순응하게 되고요. 그런데 티노 세갈의 경우에서 보았듯이 퍼포먼스라는 행위가 어떻게 소유될 수 있을까요? 저는 행동을 지시한 인스트럭션이 바로 구매 대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작품 <눈 크게 감고(Eyes Wide Shut)>(2002)는 아시다시피 40평방미터의 하얀 방에 8,000와트라는 어마어마한 광량으로 눈을 뜰 수 없을 만한 상황이 전부인 작품입니다. 저는 이러한 방을 구성할 구체적인 내용을 전달했는데, 결국 컬렉터는 ‘상황’을 구매한 것이고, ‘빛’을 구매한 겁니다. 이러한 유형의 작품 거래는 일반적이지 않았지만 가능합니다.
<카메라 특정적>이란 작품에서와 같이 퍼포먼스를 진행할 경우, 현장에서의 퍼포먼스가 하나의 작품으로 완결되게 하고, 이를 기록한 비디오의 경우 완전히 개별화시켜 다른 작품으로 자리하게 합니다. 다른 제목, 다른 내용으로 하나의 독립된 비디오 작품을 만드는 것이죠. 반면, 비디오 작품을 위해 초대된 퍼포머들의 행위, 장소, 시대에 대해서는 전혀 공개하지 않습니다. 퍼포먼스와 비디오에 등장하는 행위를 완전히 구별해놓은 것이죠.

<사람 객관적> 프로젝트와 관계가 있는 <공공의 공백(Public Blank)>(2006~2008)작업에 대해 이야기해주세요.

<공공의 공백>은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대한 새로운 제안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공공미술을 시도해왔으니까 미술가로서 공공미술을 한다는 게 특별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기존의 방식에도 완전치 못한 부분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오브제로 이루어진 미술의 나열이 되든, 오브제 하나 없는 사람들의 행동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미술이든 빈 구석은 분명 있다고 생각한 겁니다. 일단 공공미술이라 하면 ‘사회에 유용한 미술’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공공미술은 어느 시대에선 프로파간다로 작동되어왔고, 특정 공동체에 소속된 구성원들에 대한 교육적 차원에서 작동된 적도 있어요.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건물을 신축할 경우 건축법에 의해 미술 장식품을 의무적으로 설치하게 하는데, 이러한 것도 공공미술의 범주 안에 들어갑니다. 이렇게 많은 얼굴의 공공미술이 있습니다만, 궁극적으로는 어느 공동체에서든 구성원들에 의해 만들어진 내러티브가 중요한 요소라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할 겁니다. 공동체의 지배층에 의해 강제된 것을 제외하곤 대부분 보통 사람들의 정서를 대변하는 상징으로 자리할 겁니다. 그런데 제가 흥미롭게 주목한 것은 사람들에 의해 조직되어 일종의 운동으로 전개되는 행동 중심의 공공미술입니다. 특별한 형태를 가진 조각물이 어느 장소에 설치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이 열린다거나, 공청회가 열린다거나, 그냥 시낭송회가 열리는 것과 같은 실천적 미술이 여러 공동체에서 전개되어왔다는 것이 저를 기쁘게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다수에 의한 행동이 이루어지려면 단순히 뜻이 통하는 사람들의 친목회 같은 모임이 요구되는 것은 아닐 겁니다. 무언가 기존 공동체의 인식의 변화가 절실해질 때 공동의 합의에 의해 행동이 유발될 겁니다. 그러나 이러한 합의를 위해서 필수불가결하게 요구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건축법에 의거해서 조각 작품을 세우는 것보다는 훨씬 치밀해져야 할 거란 생각이 듭니다. 만약에 한 개인이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공공미술을 진행하려 한다면, 사실상 이루어지기가 어렵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미술가들은 간간히 그런 일을 해요. 왜냐하면 자신의 의지가 선(善)하다는 믿음 때문에 그런 거지요. 다수에 의한 공동의 덕이 한 개인을 투사로 만들기도 하거든요. 그러나 사람들이라는 그 대상이 미술가가 상상하는 어떤 유토피아적인 이상으로서의 사람들이 아닙니다. 제가 보기에는 굉장히 다른 맥락에 위치한 사람들인데, 그 사람들을 돕고자 하는 마음, 나누고자 하는 마음, 사랑의 마음, 이런 것들로 인해서 자신의 목적과는 다른 구조의 이야기가 발생될 경우가 많을 겁니다. 그래서 이런 활동들은 대부분 개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집단에 의해서 이루어지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혼자서 할 수 있는 공공적 미술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매뉴얼 북이었습니다. 이 매뉴얼을 보고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공공미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거죠. 솔직히 이 매뉴얼 북을 가지고 제가 제안하는 공공미술을 실제로 실행할 사람이 나타날 거라고는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공공의 공백>의 다음 프로젝트는 사람들과 실제로 같이 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질 겁니다. 예를 들어 한 시간짜리 공공미술인데, 한 시간만 공공성을 갖는 조각 혹은 행위를 만드는 것이죠. 물론 저 혼자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과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장소에서 진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공공미술이라는 것을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어느 지역에 내재되어 있는 문제나 흥밋거리 아니면 다른 새로운 담론거리를 찾아보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공공의 공백>이라는 제목은 우리가 공공성이라는 의미 때문에 굉장히 의미심장하고 엄숙하게 다가가지만 사실상 빈 곳이 많다, 그런 이야기인 거죠. 길을 가다 보면 똑 같은 장소에서 같은 시간에 계속 노래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저는 바로 그런 게 공공미술이라고 생각해요. 간판들이 모두 다 꺼져 있는데 그 중 하나만 켜져 있다면, 그것도 일종의 공공미술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것들이 일종의 여분의 공공미술, 은유의 공공성이라고 할 수 있겠죠.

말씀 중에, 선생님의 매뉴얼 북을 보고 실제로 프로젝트로 실현되는 일은 어려울 것이라고 하셨는데,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만약에 제가 어떤 공공미술을 제안을 했을 경우, 개인이 생각해낸 어떤 아이디어를 실현한다는 말이 되겠죠. 이때 미술가 개인을 중심으로 조직 구성이 이루어지겠죠. 이건 제가 주인공으로서 역할을 한다는 것이 아니고, 중요한 의미로서 어떤 체계를 만든다는 겁니다. 그런데 제가 <공공의 공백>에서 제안했던 내용들은 그러한 체계를 위한 것이 아니에요. 저의 개인적인 독백 같은 것이며, 어느 지역의 어느 사람들이어도 공감할 수 있는 매우 폭넓고 비현실적인 제안일 뿐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이 프로젝트가 실행된다면 어디든 물리적인 공간이 요구될 테고 무언가의 물질로 만들어져야 한다는 말인데, 이러한 유형의 아이디어는 행정적 절차를 관리하는 사람들이나 법적 절차를 밟아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번거롭고 실행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방해 요소와 만나게 될 것을 의미하거든요. 그래서 실현은 매우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실제로 실현되면 재미있을 것 같긴 합니다.

한 시간만 하는 공공미술이라고 이야기하셨는데, 외국의 사례를 생각해보면 곰리(Antony Gormley) 같은 경우도 공공미술 프로젝트에서 퍼포먼스를 한다거나 연단을 만들어서 사람들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을 거기에 올라가서 하게 한다거나 하는 것들이 있었잖아요. 그렇게 일시적인(temporary) 공공미술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일시적 공공미술은 그것이 미술 같지 않은 것처럼 보일 때 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보통 사람들의 일상의 연장과 같은 것을 말합니다. 미술이라는 것은 시각적 이미지를 통하여 소통하는 방법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언어나 몸짓으로 상대와 소통을 하는 데 비해 현대미술은 쉽게 알 수 없는 기호 같은 것으로 소통하는 방식입니다. 그래서 미술은 사람들의 현실과 무관한 것으로 오해받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철학처럼 인생의 지침을 대신해주는 이미지로 대접받기도 합니다. 또는 감정을 아름답게 표현해주는 도구로 보기도 하고 무언가 묵직한 메시지를 전해주는 인식의 지지대로 보기도 합니다. 이런 이유로 공공미술은 엄숙하거나 진지해져야 하는 숙명을 안고 있습니다. 자칫 너무 일상적이거나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게 되면 역작용이 날 수도 있는 겁니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우리 주위에는 너무나도 많은 미술이 거리에 넘쳐납니다. 공연처럼 보고 싶을 때 관람하는 것이 아니라 한번 위치한 공공미술은 매우 오랜 기간 그 장소를 지배합니다. 보기 싫어도 봐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동네 어귀에 있었던 어느 우체통이 사라져도 그리운 법이고, 매일 듣던 어느 집 강아지의 짖는 소리도 안 들리면 그리운 법입니다. 일시적 미술은 우리의 빈 곳에 있다가 금방 사라져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시적 미술은 전통적 미술과 같이 물질성, 정착성, 영원성을 강조하지 않습니다. 일시적 미술은 눈에서 금방 사라지기 때문에 우리의 기억에 다른 이야기로 오래 남게 됩니다. 이런 것은 기억의 랜드마크라 할 수 있죠.

김홍석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공공’의 의미, ‘공공’이라는 단어의 뜻에 대해 간단하게 이야기해주세요.

공공을 생각하기 이전에 대중(大衆), 혹은 다중(多衆), 혹은 공중(公衆), 민중(民衆)이라는 단어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요. 크게 묶으면 ‘다수의 사람들’이라는 뜻이죠. ‘공공’이라고 하는 것은 개인에게 관련된 것이 아니라 개인을 대표할 수 있는 커다란 다수에 의한 공동체를 뜻합니다. 하나의 뜻을 모을 수 있는 하나의 무리를 이야기하는 건데, ‘공공적’ 혹은 ‘공공’이라고 하는 의미에는 시대성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서 그 시대성이 한 개인과 위배될 때는 당연히 자신과 맞는 ‘공공’을 찾아가지 않을까 싶어요. 그런데 ‘공공’에서 중요한 것은 다양한 색깔의 공공이 많을수록 좋다는 거죠. 그것이 많을수록 공공끼리의 평등, 더 작게 이야기해서는 개인끼리의 평등이 이루어지겠고, 다툼 같은 것이 덜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공공은 다중에 의한 공중을 위한 실천적 사유가 아닐까 싶네요.

마지막으로 <다름을 닮음(Assimilated Defferences)> 프로젝트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죠.

<다름을 닮음>이란 프로젝트는 말 그대로 미술 안에서 흔히 얘기되고 있는 ‘차용’, ‘모방’ 같은 이야기들로부터 시작됩니다. 외국에 살다 보면 흔하게 겪는 일인데, 외국 사람들로부터 이런 질문들을 받게 돼요. ‘한국적인 미가 무엇이냐’, ‘한국성이 무엇이냐’, ‘동양의 정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등. 제가 일본이나 중국 친구를 만나 보아도, 자기 나라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기보다는 미국의 재즈 역사에 대해 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곤 했습니다. 제가 독일에서 공부할 때입니다. 교수를 비롯하여 주변에서 저의 작품을 보고 한국적인 요소를 발견할 수 없다고 하더군요. 제가 한국의 주변적 정체성에 대해 언급하면, 탈식민지 이론의 연장이라고 했습니다. 도대체 저라는 사람은 무색, 무취의 인간이 되어버린 겁니다. 그러나 저는 이러한 저의 모습이 현대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의 한 부분이라고 판단하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뿌리를 찾으려 하고 원본에 대한 존경을 보내고 있을 때 이국에서 서양 현대미술을 공부하며 한국의 국적을 두고 이런저런 잡다한 일에 관심을 갖는 저라는 정체성에는 바로 이러한 혼성적 요소가 당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이것은 누구에 의해 지적받을 만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겁니다. 그런데 주변의 동양 친구들은 서구인들의 요구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들은 마치 예전부터 그래온 것처럼 동양적 요소라 여겨지는 것들을 작품에 대입하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어 일본 작가들은 일본식 애니메이션의 캐릭터 같은 것을 캔버스에 등장시키고 이러한 이국적인 것을 통해 일본 현대미술가로 자리매김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만들어낸 주체가 이런 것이 일본적일 것이다라고 의도했다는 게, 제게는 재미있게 작용했습니다. 이것은 미술가가 수용자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생산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미술가들은 수용자가 타국인이라는 걸 정확히 알고 시작했다는 겁니다. 우리의 경우에 한국성이라는 것은 서양에서 만들어낸 이야기라는 것이 후기식민주의 이론에 다 나와 있으니까, 우리가 그걸 다시 흉내냈다고 얘기하기도 하는 겁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아무리 서양의 문화, 조직, 시스템과 법을 받아들였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받아들였던 현실은 다를 수 있어요. 개인들의 정서, 이를테면 고향에 대한 느낌, 내가 자랄 때 친구들이랑 어떤 대화를 했고 어떤 음악을 들었고 하는 것들은 그것이 어디스럽다라고 절대적으로 정의할 수는 없는 것이지요. 이건 제가 독일에서 경험하여 알게 된 제 정체성의 당당한 수용과 같은 겁니다.

타자를 의식하며 그걸 닮아가는 탈식민지화를 이야기하는 건가요? 번역의 문제, 외국 이론의 수용같은 문제들에 대해 많은 논의가 있어 왔죠.

그렇죠. 비단 우리나라만 그런 게 아니라 웬만한 나라는 다 그랬을 겁니다. 그걸 가지고 누굴 닮았다, 안 닮았다 하는 것은 예전 식민 시대에나 통하는 이데올로기라 생각합니다. 물론 그것이 적용되는 나라가 아직도 있을 테고, 어쩌면 지금의 우리에게도 적용될지도 모릅니다. 그것을 닮을 수밖에 없는, 동화될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누군가를 흉내내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 스스로 창피해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흉내를 창피해하면서 우리나라의 경우, 유럽의 오페라를 번역하여 공연합니다. 높은 코를 강조하는 분장을 하고, 의상을 갖춰 입고, 번역된 한국어로 푸치니(Giacomo Puccini)의 오페라를 보여줍니다. 반대로 서양 사람들이 심청가를 공연하겠다고 한국어를 영어로 다시 번역해서, 한국 사람으로 분장하여 미국 내에서 공연할 것이라는 건 상상하기 힘듭니다. 이 경우에는 한국인들이 서구인에 대한 동일시 과정을 전개한 것이고, 그와 동시에 한국인들은 서구의 오페라와 다른 한국적인 해석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흉내 다음에 발생하는 차이를 두려워한 것이지요. 서구에 대한 흉내는 서구에서 통용되기 어렵습니다. 그건 단지 한국에서 적용되기 위한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그것은 서구의 모방이라고 비판하면 곧 바로 서구 것과 차이가 있다고 주장하기 시작합니다. 이런 것은 제가 말하는 닮음과는 확실하게 다른 것입니다. 왜냐하면 전략적으로 흉내를 차용한 것이 아니고, 차이를 차용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한치 앞도 못보는 우둔한 행동일 뿐입니다. 흉내낸 사실이 우리의 모습이라는 것을 강조한다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반응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반적으로 음악가들은 다른 음악가의 작품과 차이를 두려고 합니다. 내 작품은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와 다르다고 하고, 비틀즈(The Beatles)와 다르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차이를 강조하는 것은 자기의 자리 할당을 위해 필요한 절차입니다. 이때 모차르트와 다르다는 것이 소속된 공동체에서 수용되면 그는 자신의 자리에 대한 합의를 얻어 낸 것입니다. 반면 그렇지 못하다면 차이의 단절이 일어난 것이지요. 이렇게 차이에 의해 발생한 자리는 공간화되고 이러한 공간의 무리들이 모여 하나의 문화를 만들어갑니다. 차이에 합의가 발생하든 단절이 발생하든 그 주체들은 고유한 자리를 배분받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과 저것의 차이가 분명하다고 해서 모든 것이 질서를 갖추는 것은 아닐 겁니다. 일종의 합의 과정에서 도태되거나 무시되는 자리는 항상 있습니다. 그런 자리의 주체들은 소외자로 분류됩니다. 공동체의 차이 법칙과 자리 할당에 동의하지 못하거나 그럴 의지가 전혀 없는 주체들을 말합니다. 이들은 자신이 발언할 의지가 없는 것이 아니라 다른 차이의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구조라는 게 차이와 차이 사이에 존재하는 공간을 말하는데, 많은 이들이 이런 공간을 소외라고 부르기도 하고 주변부라고 하기도 합니다. 이들은 차이를 발생시키지 못하는 주체가 아니라 기존의 차이의 개념과 다른 차이를 가지고 있는 이들입니다.

거짓말이 전제가 되는 작품이 눈에 띄는데, 이런 작업에 두는 의미가 궁금해요.

거짓말은 ‘닮음’이라고 하는 것을 완성하기 위해필요한 요소입니다. 차이를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거짓말을 통해 타인과 닮음을 시도합니다. 거짓말은 누구를 속여 쾌락을 얻거나 이득을 취하는 것을 말하지만, 이 경우에는 그러한 요소가 없습니다. 닮음을 이해할 수 없는 이들에겐 이것이 거짓말로 보이게 되는데, 예를 들면 가짜를 진짜처럼 보이게 하는 것을 말하기도 합니다. 서구의 비프 커틀릿(beef cutlet)이 일본인의 기호에 의해 밥과 함께 먹는 비후까스로 변화되고, 이것이 다시 한국으로 전해지면서 일본의 근대 음식으로 각인되는 것도 그렇고, 베르사이유 궁전을 흉내 낸 어느 모텔의 건축적 외형도 그렇습니다. 이것은 가짜이지만 마치 진짜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거짓입니다. 그러나 이 거짓말에는 진짜의 원형이 전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럴 의지도 애초에 없습니다. 심지어 이것은 흉내낸 것임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원형을 갖게 됩니다. 이러한 유형의 거짓말은 흉내에서 시작된 것이지만, 이러한 단순 비교 이외에도 훨씬 지능적인 거짓말이 존재합니다. 아무리 지능적이어도 이것에 대한 접근 태도는 비윤리적이지 않습니다. 나아가 새로운 주체를 형성하는 힘도 있습니다. 제 작품에서 ‘닮음’은 동화작용이자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새로운 서사를 말합니다.

조금 전에 말씀하신 소외 혹은 주변부의 자리라는 건 구체적으로 어떤 거죠?

차이와 차이 사이에는 경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경계와 경계 사이에도 놓이지 않는 공간이 있습니다. 경계선이 없는 공간이랄까? 이런 공간이 ‘사이의 공간’이 아닐까 싶어요. 차이를 두려는 사람이 있고, 안 두려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데 차이를 두려고도 두지 않으려고도 하는 이들도 있어요. 어떤 이들은 이들을 소외자라고 하는데, 그들에게는 자의든 타의든 한마디로 말할 수 없는 ‘사이’가 생깁니다. 제 입장에서 봤을 땐 그것이 하나의 가능성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방으로 오역될 수밖에 없는 무언가를 창출해내는 거죠. 그런데 실제로는 주체성이 매우 강합니다. 미국에 거주하는 어떤 한국 사람이 미국 것에 대해 알고 있다고 하면 누군가 “왜 한국 것은 모릅니까”라고 물어볼 거예요. 그런 질문을 받은 한국 사람이 “나는 여기 있기 때문에 한국 것을 모릅니다. 나는 그냥 나를 알 뿐입니다”라고 답한다고 가정해봅시다. 이러한 사람들이 바로 차이와 차이 사이에 있는 사람들인 거죠. 하나의 단어로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그런 부분이 분명히 존재해요. 어딘가의 사이에 끼어 있기 때문에 스스로 자기 존재가 무엇인지 모르고 있었을 뿐이지, 실제로는 굉장히 큰 부류로 자리하고 있었던 거죠. 그런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담은 것이 <다름을 닮음>이고, 제가 그런 시도들을 해보는 것은 남들이 해석을 못하거나 결론을 짓지 못하는 일들에 대해 반증하는 겁니다. 제가 이러한 유형의 작품들, 그러니까 번역 작업이라든가 거짓으로 구성된 텍스트를 미술로 공개하면 고지식한 사고방식을 가진 분들은 “그래서 당신이 말하고자 하는 게 뭡니까” 혹은 “이것에 대한 결론은 뭡니까”라고 꼭 물어봐요.

결론이 꼭 있어야 하는 사람들이죠.
결론을 중요시하는 사람들은 매우 많습니다. 결론이 중요하기 때문에 시작도 중요할 겁니다. 아마도 이들은 인과론에 입각한 서구의 이성중심주의를 신봉하는 모더니스트들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나 제가 말하는 중간 또는 사이의 공간에는 결말이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필연은 우연으로, 닫힘은 열림으로 변화된 공간을 말합니다. 이것은 분명하지 않은 결말이 가능한 공간이고, 작가에 의한 제시가 아니라 관람자에 의한 해석이 우선되는 공간입니다. 이 공간은 부단히 새로운 시작을 시도합니다. 그리고 무한한 해석을 향해 열려 있는 텍스트를 창출합니다. 고정된 결말을 수정 또는 초월하며 또 다른 가능성을 탐색하는 태도가 제 작품에서 중요한 덕목이 아닐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