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sed on Seoul, 43-year-old artist Gimhongsok is known internationally through his frequent participation in high-profile international biennials like Gwangju, Venice, Taipei, Valencia and Tirana. Yet, due to the range of his practice encompassing sculpture, installation, video and performance works expressing deadpan satirical humor, both his working process and personal style remain enigmatic, earning him “mysterious genius” standing at home. While some works of art scream out their agendas and others wait quietly to be discovered, Gimhongsok’s works often eagerly announce their won spectacular presence through the incorporation of the artist’s graffiti like wall texts, only to lure viewers into a labyrinthine journey towards ever-elusive meaning. ArtAsiaPacific spoke with Gimghonsok seeking demystification.

ART ASIA PACIFIC: Given the breadth of media you work with, is there any piece that best represents your style?

김홍석씨의 작품은 제작 방식과 최종작품에 있어서 다양성을 보입니다. 작품이 사진, 인스털레이션, 퍼포먼스, 영상등 다양한데요, 작가 본인이 대표작을 꼽는다면 어떤 작품인지요? 그 작품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GIMHONGSOK: Although it is common for contemporary artists to utilize diverse media, many still express a certain signature style. In such a light, I could be accused of doing something completely arbitrary or nonsensical, because neither my methodology, nor the images I create represent stylization, which I expressly resist. Perhaps I want my works to be recognized by word of mouth. As such, it is agonizing for me to pick a representative work. We live in an age when images and texts reproduced in catalogs have a stronger presence than actual works. An artistic intention or device is safer on paper, and a specific site and contextual background have more force when disseminated in print.

한 작가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자신의 작품을 표현하는 일은 현대미술에서 아주 흔한 일임이 분명하지만 매체에 의한 작가의 고유한 스타일은 미술계와 그에 관계된 이들에게 여전히 요구되는 사항 입니다. 이러한 문제로 인해 저는 아주 불편하고 멍청한 일을 진행하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저의 다양한 매체적 사용으로 인해 방법적으로든, 이미지로든 어떠한 스타일이 발생치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 작업이 시각적 이미지로 인식되어 스타일화 되는 일을 거부해 왔습니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 지길 바랬는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저는 저의 대표작을 스스로 꼽는 일에 무척 혼란스럽고 고통스럽습니다. 이미 미술은 실제의 작품보다 카타로그 속의 이미지와 텍스트가 훨씬 강력한 시대에 놓여 있습니다. 어떤 작가에 의해 행해진 멋진 미술적 의도나 장치는 인쇄된 종이 위에 머물러 있을 때 안전하고, 특정한 장소와 텍스트적 배경 또한 배포 되었을 때 그 힘이 더욱 위력적입니다. 이때 만약 미술 작품이 상품 카타로그 속의 아이템의 이미지적 정보로써 작용한다면 무척 시시해 집니다. 정확할수록 멍청해 지는 일이 미술 카타로그에서 발생되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따라서 실제 작품 또한, 명확한 이슈만으로는 무언가 부족하고 멍청한 이미지를 나열한 회화라도 우리를 즐겁고 유쾌하게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실제 제가 좋아하고 흠모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실제 본 적은 극히 드뭅니다. 그러나 카타로그나 온 라인상에서 접했을 지라도 그것이 나타내는 훌륭한 컨텍스트는 제게 전설이 되고 영웅이 됩니다.

AAP: One of your recurring themes seems to relate to models of communication in different societies. What inspires that?

계속해서 표출되는 테마 중 하나는 이질적인 사회간의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것인데요, 영감의 원천은 무엇인가요?

G: World history written in Korean, foreign literature in Korean translation, television drama series made in the West and foreign language texts all inspire me. I am afraid to travel to foreign countries, and I am especially reluctant to find new things. This is simply my personal characteristic, it doesn’t reflect any broader agenda. So I am used to experiencing the world secondhand. Interpreted texts always interest me as I find possibilities in them of creating something new through re-interpretation. This may be parasitic, yet because I am not dependent upon any subject, nor do I alter the subject, I often believe that I am on a perfect journey.

한국어로 쓰여진 세계사, 한국어로 번역된 외국 문학, 서구에서 제작된 TV 드라마, 외국어교본들은 모두 제게 흥미로운 영감을 줍니다. 저는 낯선 곳에 대한 여행을 두려워합니다. 특히 새로운 것을 직접 찾으러 다니는 일에 대해 매우 소극적입니다. 이는 전적으로 저의 개인적인 성향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어떠한 의도에 의해 행동 강령이 결정된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저는 간접적인 체험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일에 대해 매우 익숙한 편입니다. 타인에 의해 해석된 텍스트들은 제게 항상 즐거움을 주는데 저는 이를 다시 해석함으로써 마치 더 새로운 것을 제시할 수 있는 듯한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기생하는 일이지만 한편, 주체에 대해 종속되는 일도 아니며, 또한 주체를 변형시키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저는 스스로 완전한 여행을 하고 있다고 착각을 하곤 합니다. 일종의 메타 언어 metalanguage 놀이라고 생각됩니다.

AAP: What is your working process?

작업 과정 및 방식에 대해서 알려주세요.

G: With most works I begin by choosing a word or set of words. These sometimes come from the exhibition theme, but mostly from television, which I watch whenever I can. The real pleasure for me is to watch TV when I'm totally relaxed- It is one-sided and egocentric relationship. I do not rely on TV for information nor does it console me. It operates by electricity and I simply lie there in front of it. But I sometimes think about TV producers' intentions. This is when I start associating various words, selecting haphazardly from those that come to mind. I ignore the word’s dictionary definition, give it new meaning and combine it with chosen objects. These build up fictional narratives that resemble history, fairytales or slogans. Then I apply my narratives to reality. I teach fictive history to young students or I intentionally misinterpret other artists' works. These fictions are essentially lies which I manipulate into believable truths. They are presented as photographs, preserved as moving images or transferred into video works. I always provide them with false texts about their origins. Some examples include Mao Met Nixon (2004), a fictional archiving system in which the summit conference between Mao Zedong and Richard Nixon is analyzed by scientists and the CIA; or The Seoul Massacre (2004), in which a group of modern dancers are asked to lie still for two hours and play dead; and Neighbor's Wife (2005), for which I photographed images of famous artists' works reproduced in catalogs. These examples suggest three different issues. First is the relationship between my lie and the audience, the secondly, the monetary transaction with the performer; and the thirdly, plagiarism.

대부분의 작업은 하나의 단어나 조합된 단어들을 설정한 후 시작합니다. 단어의 설정은 전시의 주제에서 비롯되기도 하지만 대부분 TV에서 발견됩니다. 저는 시간이 날 때는 어김없이 TV를 봅니다. 정말 즐거운 일은 방안에서 아무런 부담 없이 TV 프로그램을 누워서 보는 일입니다. TV와 저의 관계는 서로 일방적이며 이기적 입니다. 저는 TV에서 정보를 취하는 것이 아니며 위안을 얻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TV는 전기에 의해 가동되고 있으며 저는 그 앞에 누워 있는 것 입니다. 그러나 가끔 TV의 프로그램을 만든 이들의 의도를 생각해 보곤 합니다. 이때 어렴풋한 단어가 발생합니다. 저는 제 머리 속에 발생된 단어들 중 하나를 무작위적으로 선택합니다. 선택된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또 다른 의미로 전환시키고 이렇게 의미가 전환된 단어를 사물들과 결합 시킵니다. 물론 이때 사물은 물질로써 결합되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로써 결합됩니다. 그 이후 조합된 새로운 단어들은 가상적 이야기로 만들어 집니다. 가상적 이야기란 역사이기도 하고 동화이기도 하고 표어이기도 합니다. 이때 제가 기술한 이야기를 현실에 적용시킵니다. 나이 어린 학생들에게 제가 거짓으로 지어낸 역사를 이야기 해주기도 하고, 남의 미술 작품을 제 마음대로 해석하여 설명해 주기도 합니다. 이러한 가상의 이야기는 대부분 거짓말입니다. 거짓말인 이유는 그것이 가상이라는 확신이 들지 않도록 아주 그럴싸하게 진짜처럼 제가 조작을 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거짓말은 사진이 되기도 하고, 영상으로써 기록되기도 하고, 영상 자체가 거짓으로 전환되기도 합니다. 오브제가 등장할 경우에는 어김없이 그 오브제의 출처에 관한 거짓된 텍스트가 동반됩니다. 예를 들어 마오저뚱 Mao Zedong과 리차드 닉슨 Richard Nixon의 정상회담의 대화를 그 당시 과학자들과 미정보국의 협력으로 그들의 대화를 수집하여 보관했다는 비화라던가(Mao Met Nixon, 2004), 현대 무용가들과 협업에서 대학살의 주제로 그들을 시체로 둔갑시켜 2시간 동안 움직임 없이 누워있게 한일이라던가(The Seoul Massacre 2004), 유명 미술가의 카타로그 속의 작품을 기록한 사진을 다시 사진 촬영하여 사진 작품으로 전환하여 전시한다던가(Neighbor’s Wife, 2005) 하는 일입니다. 이 세가지 예에는 세가지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는 저의 거짓말과 관객과의 관계이며, 두번째는 퍼포먼스 참여자와의 돈거래이며, 세번째는 타 작품에 대한 모방 시비가 그것입니다. 저의 세가지 시도는 종종 윤리와 충돌하며 이때 적대(Antagonism)를 갖는 이들과 환대하는 이들로 양분됩니다. 가장 시비가 많은 것은 두번째의 경우 입니다. 제가 기획한 6 Way Talks 2005(6자 회담에 관련한 국가 즉, 한국, 북한,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의 국가Anthem를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 노동자에게 모국어로 부르게 한일), Pickets 2004(미국 내에서 성추행을 당하는 미성년 소녀를 구제하기 위해 20대 여인들의 팬티를 모아 모금으로 전환하는 일), Literal Reality 2004(한국 및 미국 미술관에 설치한 베트남어로 쓰여진 욕설)들은 기획의 의도와 텍스트의 내용으로 인해 불편한 상황이 전개 되었습니다. 이러한 저의 작품 전개 방식은 전적으로 TV에서 기인된 것이며 이러한 의도와 작품의 내용으로 인해 타인에게 물리적 피해를 주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AAP: How do people respond to your works?

관객들은 어떻게 반응했다고 보십니까?

G: My works challenge ethical conventions and audience reactions are generally split between antagonism and acceptance. They play upon politically charged or sensational contexts to create uncomfortable situations: for example, 6 Way Talks (2005), featured foreign workers residing in Korea singing – in their native languages – the national anthems of the six countries represented in the Six-Way Talks over North Korea’s nuclear capability; Pickets (2004) proposed fundraising for sexually abused girls in the US by selling the panties of young women; and Literal Reality (2004) consisted of curses written in Vietnamese inside museum in Korea and the US.

제 작품은 우리들의 타인에 대한 적대적 태도와 수용 가능한 태도에 대한 도전과 같습니다. 윤리적 관습과 관람자들의 반응은 제 작품의 주제에 중요하게 작동하게 하는 요소인데 관람자들이 무언가 불쾌하고 평안하지 않은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 이유는 전통과 이질적 문화 사이에 위치하는 내용을 건드리기 때문일 겁니다. 예를 들면, 작품 6자 회담 6 Way Talks (2005)에서는 한국의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현재 한국의 정치와 관련이 깊은 여섯 나라, 즉 한국, 북한, 일본, 중국, 러시아, 미국의 국가를 불러보는 일이었습니다. 이때 여섯 나라의 국가의 가사는 베트남, 방글라데시, 미얀마, 파키스탄등의 언어로 번역된 후 멜로디만 그대로 부르게 된 것인데,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의 정치에 관심을 가질 수도, 관여할 권리도 없는 무력한 주체로 변한 것이고, 이들의 노동의 목적과 한국의 정치적 긴장 사이에는 어떠한 공통의 합의가 없음을 보여 주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이주노동자들과 이 작품을 진행했던 저와는 어떠한 동지의식을 공유할 요소가 없었기 때문에 이들도 저로부터 조종당한 무력한 존재임을 확인하게 된 셈입니다. 작품 피켓 Pickets(2004)은 소위 개발도상국과 같이 자국의 언어가 있지만, 국제적으로 거의 소통되기 어려운 언어로 이루어진 텍스트입니다. 여러 피켓 중 하나의 내용은 젊은 여성들이 자신이 입고 있는 팬티를 벗어 그것을 원하는 남성들에게 판매하라는 것입니다. 수익금은 성폭행으로 정신적, 육체적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미국의 십대 어린이들의 재활을 위해 기부금으로 사용된다는 매우 자극적인 내용입니다. 또한 작품 Literal Reality(2004)는 한국과 미국에서 전시를 통해 알려졌는데, 베트남 욕설을 매우 크게 확대하여 미술관에 걸어 두는 일이었습니다. 그 내용은 밝히지 않겠습니다.

AAP: What about the works you presented at the Gwangju Biennale in 2006?

하나의 방을 구성된 인스톨레이션과 퍼포먼스로 이루어졌던 2006 광주비엔날레의 출품작들에 대해 이야기 해주세요.

G: The Gwangju installation comprised three videos, three photographs, two paintings, two objects and a performance. Everything except the performance was placed in one room, which was brightly lit with bulbs totaling 3,000 watts, quiet different from the conventional white cube. All works were created prior to Gwangju, and none were made especially for the occasion. But they were all displayed in a single space to create a story; the association was realized through texts written on the wall and the floor. It was an experiment to re-read a work of art by re-categorizing them. Other artists' works could also transformed in this way by changing their environment and altering the intentions. In The Talk (2004), one of three video works on translation and communication, a hired actor playing a foreign worker describes his legal rights to an interpreter and myself in a non-existing language. The English subtitles, unrelated to the story, relate the success story of an Indonesian worker in Korea.
Another video, Ich bin ein Berliner (2006), started from the Korean translation of John F. Kennedy's famous speech delivered at the Berlin Wall in 1963. I trained a Korean elementary school student to do the speech and videotaped him. All the video works were performed by people other than myself, undermining the seriousness of the themes such as human rights, ideology, and ethics. Personally, I think that contractual relationships based on money are a bigger issue than these serious themes. This is what makes audiences uncomfortable. The conflict between artwork and audience inspired me to do a performance where a person wearing a costume maintains a certain pose following my instructions. However, for The Bremen Town Musicians (2006) at Gwangju, I did not hire a performer but rather placed a mannequin inside an animal costume. The text describing the work claimed that I had paid a Spanish worker to wear the suit and hold the same posture for a certain length of time. Both the existence of the performer and the financial transaction existed merely as text. The realization that the "man" in the animal costume is actually a mannequin relieves potential moral anxiety. This piece mixed formal motifs from Italian artist Maurizio Cattelan’s Love Lasts Forever (1999), a sculptural piece composed of stacked skeletons of a donkey, dog, cat and rooster, and Mexico-based artist Santiago Sierra’s practice of hiring workers to perform tasks. Another piece appropriated textual work by the Danish art group Superflex, and there was a photograph of a Luc Tuymans' painting. All works addressed the possibilities of communication with others, in this case the others being the West. Texts written on the wall and floor related to the art works but were also independently viable, suggesting the linguistic limitations to communication.

이 작업은 3개의 비디오, 3개의 사진, 2개의 회화, 2개의 오브제, 1개의 퍼포먼스로 구성되었습니다. 퍼포먼스를 제외 하곤 이 모든 것들이 제가 설정한 방에 설치되었습니다. 총 3000 Watt의 광량으로 이루어진, 무척 밝은 이 방은 하얀 색 벽과 바닥으로 인해 그 공간감이 실제의 익숙한 공간과 차별을 가집니다. 비디오, 사진, 회화, 오브제들은 광주 비엔날레를 위해 새로 제작된 것이 아니며 모두 이전에 개별적으로 완성된 작품 들입니다. 이들을 한 곳에 모아 놓고 하나의 이야기로써 가능하게 조합되었는데 이러한 조합은 벽면과 바닥에 쓰여진 텍스트에 의해 가능해 졌습니다. 이미 완성된 저의 이전 작품들은 이 하얀 방에서 새로운 의미로써 기능되었는데 이미 완결된 개별 작품도 다른 카테고리에 포함시켰을 때 또 다른 해석이 가능할 수 있다는 실험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미 완성된 다른 작가의 작품도 다른 장소, 다른 의도에 의해 새로운 작품으로 변화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3개의 비디오 작품 중 The Talk, 2004는 번역과 소통에 관한 것으로 외국인 노동자를 가장한 연극 배우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언어로 저와 통역자에게 자신의 권리에 대해 설명하는 일입니다. 이 때, 자막은 영어로써 그의 대화와는 무관한 인도네시아 출신의 노동자가 한국에서 성공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다른 비디오 작품인 Ich bin ein Berliner 2006 는 1963년 미합중국의전대통령인 John F. Kennedy가 베를린 장벽 앞에서 서독인들에게 한 연설을 한국어로 번역한 연설문에서 시작됩니다. 저는 한국의 초등학생을 섭외하여 이를 연습시킨 후 비디오로 촬영하였습니다. 위에서 설명하였듯이 모든 비디오 작품은 제가 아닌 다른 참여자들이 출연하게 된 것 이며, 인권, 이념, 윤리에 관한 다소 무거운 주제는 참여한 퍼포머들에게 돈을 지급함으로 해서 그 주제의 무거움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돈을 지불하는 이러한 계약 관계가 작품의 무거운 주제 보다 더 중요하게 작용된다고 봅니다. 바로 이 부분에 대해 관객들은 불편해 합니다. 이런 일련의 작업들 때문에 즉, 관객과 제 작품간의 충돌로 인해, 저는 인형 옷을 입고 작가가 지시한 특정한 자세를 유지하는 퍼포먼스를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실제 퍼포머를 고용하지 않고 마네킨에 인형 옷을 입히는 일로 전환하였는데 이는 광주 비엔날레에 전시한 브레멘 악대 The Brementown Musicians 2006 가 그것 입니다. 제가 바닥에 기술한 텍스트(일종의 안내문)의 내용은 멕시코 노동자가 작가로부터 돈을 받고 일정 기간 동안 퍼포먼스를 한다는 거짓된 정보였습니다. 그러니까 실제 퍼포머가 존재하여 저와 돈거래를 한다는 것은 텍스트일 뿐이며 인형 옷을 입는 사람 같은 인형은 실제 인형이란 뜻 입니다. 이때, 관객들은 더 이상 불편해 하지 않을 가능성이 발생합니다. 이 작품은 이태리 작가인 Maurizio Cattelan의 작품 중 Love Lasts Forever의 외형적 모티브와 멕시코 출신 작가인 Santiago Sierra의 작품의 내용을 혼용한 것 입니다. 이 밖에 덴마크 출신의 미술그룹인 Superflex의 텍스트 작품과 Luc Tuymans의 회화 작품에 대한 차용적 사진 작업 및 다른 오브제 작업들이 있는데 이 방안에 설치된 모든 작품들은 타인(서구)에 대한 소통의 가능성이라는 공통된 주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벽면과 바닥에 쓰여진 모든 텍스트들은 각각의 작품과 관계된 텍스트이자 개별적 의미를 발생시킬 독립적 텍스트들이며 이러한 텍스트들이 갖는 언어적 문제가 결국 소통의 가능성에 의문을 제시하게 합니다.

AAP: Your video, The Wild Korea (2005), is a fictional, documentary-style narrative about a Korea torn apart by guns and factionalism. Can you describe its conception and production?

영상작업인 Wild Korea (2005)는 총기 소지 허용과 정치적 파벌주의로 분열을 겪는 한국에 대한 내용을 가짜 도큐멘타리로 완성한 것으로 보입니다. 작품을 제작하게 된 동기와 제작과정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G: The US is the most influential country in the formation of modern South Korea. From the 1960s to the early 1980s, US army broadcasts of American radio and television programs were for many Korean people their only contact with foreign culture. The Western movies I watched seemed more like science fiction and fantasy than an aspect of nation's history. I still find the possession of guns and the idea of one-on-one duels very attractive. Good and evil are clearly decided in one cathartic moment. Korea was one of the centers of the Cold War following the Korean War in 1953. The opposition structure changed in 1960 when a military man, Park Chung Hee, staged a coup d'etat and turned the situation into a confrontation between monarchy and democracy. That continued until 1986; I attended college in the 1980s when students declared their political positions through strikes and demonstrations. There are no grey area; it was easier to fight, curse and even switch ideologies rather than to understand the opposition. The Wild Korea is not only about Korea. It is about the contradictions of binary thinking in the West and its influence in the East.

한국의 건국과 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국가는 미국입니다. 1960~80년대 초까지 주한 미군이 운영하는 TV 및 라디오 방송은 한국인들에게도 접할 기회가 주어 졌으며 이것이 유일하게 외부 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통로였습니다. 이때 접한 서부 영화는 제게 있어 그들의 역사이기 보다는 하나의 사이언스 픽션이자 환타지 였습니다. 총기 소지 및 1:1로 결투하는 시스템은 여전히 제게 있어 매력적 입니다. 이때 선과 악의 구분이 확연하게 구분되며 해답이 명확하여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습니다. 한국은 1953년 종전 이후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에 대한 대결 구도의 정점에 있었습니다. 그것은 1960년 박정희라는 군인이 쿠데타를 통해 집권하면서 대결의 구도가 바뀌게 되었는데 독재와 민주화 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대결 구도는 1986년도 까지 이어졌는데 80년대 대학을 다니던 저로서는 대학가에 불던 저항적 스트라이크와 데모스트레이션을 통해 정치적 위치를 수동적으로나마 찾아야 했습니다. 이러한 이원적 대결 구도는 사실상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데 이것은 아군이 아니면 적이라는 아주 편리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중간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싸우기도 편하고, 욕하기도 편하고, 더더욱 자신의 이념을 바꾸기도 쉬었습니다. The Wild Korea 는 이미 파악하셨다시피 굳이 한국의 이야기만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서구의 이원적 사고 체계와 그 영향을 받은 동양의 모순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총기 소지라는 픽션이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AAP: How do you respond to assertions that your works are difficult to understand?

작품이 난해하다는 의견에 대해 어떻게 느끼시는지요?

G: I am certain that my concepts are not indecipherable. My personality might cause difficulties in communicating with others. Another reason is that I don't have a single visual style. Audiences have to "read" my works to understand them. I subordinate the medium to the role of a tool and my works take widely varying forms. Ultimately, it might be hard to understand many different types of art as opposed to a single work.

제 작품의 개념이 난해할 리는 전혀 없다고 확신합니다. 저의 개인적인 인성과 성격으로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성격으로 인해 남들이 이해하고 소통하는 법에 대해 익숙하지 않을 수도 있으며 나 자신 만의 대화법이 생겨 났을 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사고로 진행한 작품들이기에 다른 이들에게 이것이 난해하다는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고 봅니다. 다른 이유는 제 작품이 한가지의 시각적 스타일을 유지 하지 않기 때문에 관객들은 제 작품을 이해 하기 위해 항상 ‘읽어 내기’ 라는 과정을 겪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난해하다는 의미로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저는 표현에 있어 매체라는 요소를 도구로써 그 입장을 하위화 시킵니다. 따라서 여러 가지 매체를 가진 작업들이 전개되었으며 그러다 보니 여러 형태의 작품들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결국 하나의 작품을 이해 하는데 에는 문제가 없을 수 있으나 여러 작품들을 일거 내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