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ature Rules
自然国家
Gimhongsok
김홍석
-안개법(Mist Rule)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인간은 자연의 법칙을 찾고자 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인간은 자연을 관찰했고, 인간은 자연의 법칙을 알아냈다고 믿어 왔다.
그러나 인간이 알아 낸 자연의 법칙은 인간을 위한 것일 뿐 자연의 이치조차 찾아내지 못한 것은 아닐까? 인간을 위해 찾아낸 자연의 법칙은 도리어 인간을 우매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자연에는 강함과 약함의 의미가 필요 없고, 비옥함과 척박함의 차이가 존재하지 않은 이러한 이치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것은 절대적으로 인간이 상상한 자연에 대한 판단이 아니지 않는가?
자연에는 가치가 없다.
- 웅장한 경관을 가진 자연과 집앞에 흐르는 더러운 개천에는 가치의 차이가 있지 않다. 가치란 인간이 상상할 줄 안다는 오만한 언어일 뿐이다.
자연에는 질서가 없다.
- 해가 뜨고 지고 겨울이 지나 봄이 오는 것은 질서가 아니라 현상이다. 인간이 발명한 규칙이 질서이다. 인간은 자연에 질서가 있다고 믿어왔다.
자연에는 상상이 없다.
- 상상이 없기 때문에 자연은 종교적이지 않고, 이념적이지 않으며, 착하거나 악하지 않다.
자연은 감정이 없다.
- 자연이 아름답거나 용서없는 냉혹함이 있다고 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일 뿐이다.
아주 오래 전 인간은 현대인과 다르게 자연을 숭상하고 자연을 따르려고 했을 지 모른다. 지금으로부터 대략 오 천년 전, 거대한 돌을 반듯이 잘라 피라미드를 만든 인간의 의지는 과연 자연을 숭상하고 존중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다신교(多神敎)가 있을 시기, 특히 애니미즘이란 인간이 자연에 순응하고 자연을 따랐다는 것인가? 종교 의식(ritual)은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상상의 규칙이 아닐까? 일신교(一神敎)는 자연과의 결별이자, 인간의 자연에 대한 독립선언이자, 인간만을 생각하자는 이기심이 아닐까? 자연과 같이 자유롭다고 자유주의가 생긴 것은 아닐테고, 자연이 모든 존재에 대해 평등하게 분배한다고 믿어서 사회주의가 생긴 것은 아니지 않는가?
인간들은 법이 없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자연과 함께 살아가려면 짐짓 법이 있는 것처럼 공문화할 필요는 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자연은 이원적 결정이 없으나 인간들은 선택이라는 법을 만들어 판단을 시도한다.
자연에는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판단은 존재하지 않는다. 자연의 법은 옳음과 그름, 선과 악, 쾌와 불쾌로 나누어지지 않는다. 좋고, 옳고, 명료한 것은 자연에 없다.
따라서 자연의 법을 굳이 명문화하자면 안개법(Mist Rule)이라 할 수 있다.
옳지도 그르지도 않은 것,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것,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것, 긍정과 부정이 없는 것, 해가 뜨는 것도 지는 것도 아닌 것,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것, 이것이 안개법이다.
안개법은 욕망을 다스리고, 구원을 자신으로부터 찾으려 하는 주체를 존중한다. 안개법은 우리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이미 존재하는 자연의 이치이다. 우리가 이 법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자연과 더불어 사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새벽녘 안개 자욱한 도로에서 운전하는 우리는 두려움을 느끼지만, 우리 자신이 안개라면 두려울 게 무엇이랴?
2019년 2월, 김홍석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인간은 자연의 법칙을 찾고자 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인간은 자연을 관찰했고, 인간은 자연의 법칙을 알아냈다고 믿어 왔다.
그러나 인간이 알아 낸 자연의 법칙은 인간을 위한 것일 뿐 자연의 이치조차 찾아내지 못한 것은 아닐까? 인간을 위해 찾아낸 자연의 법칙은 도리어 인간을 우매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자연에는 강함과 약함의 의미가 필요 없고, 비옥함과 척박함의 차이가 존재하지 않은 이러한 이치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것은 절대적으로 인간이 상상한 자연에 대한 판단이 아니지 않는가?
자연에는 가치가 없다.
- 웅장한 경관을 가진 자연과 집앞에 흐르는 더러운 개천에는 가치의 차이가 있지 않다. 가치란 인간이 상상할 줄 안다는 오만한 언어일 뿐이다.
자연에는 질서가 없다.
- 해가 뜨고 지고 겨울이 지나 봄이 오는 것은 질서가 아니라 현상이다. 인간이 발명한 규칙이 질서이다. 인간은 자연에 질서가 있다고 믿어왔다.
자연에는 상상이 없다.
- 상상이 없기 때문에 자연은 종교적이지 않고, 이념적이지 않으며, 착하거나 악하지 않다.
자연은 감정이 없다.
- 자연이 아름답거나 용서없는 냉혹함이 있다고 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일 뿐이다.
아주 오래 전 인간은 현대인과 다르게 자연을 숭상하고 자연을 따르려고 했을 지 모른다. 지금으로부터 대략 오 천년 전, 거대한 돌을 반듯이 잘라 피라미드를 만든 인간의 의지는 과연 자연을 숭상하고 존중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다신교(多神敎)가 있을 시기, 특히 애니미즘이란 인간이 자연에 순응하고 자연을 따랐다는 것인가? 종교 의식(ritual)은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상상의 규칙이 아닐까? 일신교(一神敎)는 자연과의 결별이자, 인간의 자연에 대한 독립선언이자, 인간만을 생각하자는 이기심이 아닐까? 자연과 같이 자유롭다고 자유주의가 생긴 것은 아닐테고, 자연이 모든 존재에 대해 평등하게 분배한다고 믿어서 사회주의가 생긴 것은 아니지 않는가?
인간들은 법이 없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자연과 함께 살아가려면 짐짓 법이 있는 것처럼 공문화할 필요는 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자연은 이원적 결정이 없으나 인간들은 선택이라는 법을 만들어 판단을 시도한다.
자연에는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판단은 존재하지 않는다. 자연의 법은 옳음과 그름, 선과 악, 쾌와 불쾌로 나누어지지 않는다. 좋고, 옳고, 명료한 것은 자연에 없다.
따라서 자연의 법을 굳이 명문화하자면 안개법(Mist Rule)이라 할 수 있다.
옳지도 그르지도 않은 것,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것,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것, 긍정과 부정이 없는 것, 해가 뜨는 것도 지는 것도 아닌 것,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것, 이것이 안개법이다.
안개법은 욕망을 다스리고, 구원을 자신으로부터 찾으려 하는 주체를 존중한다. 안개법은 우리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이미 존재하는 자연의 이치이다. 우리가 이 법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자연과 더불어 사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새벽녘 안개 자욱한 도로에서 운전하는 우리는 두려움을 느끼지만, 우리 자신이 안개라면 두려울 게 무엇이랴?
2019년 2월, 김홍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