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 & Wind Store (A place that is not home or here)

일풍상회(집도 아닌, 여기도 아닌 곳)

This work is about ondol, an underfloor heating device in Korean traditional architecture; pyeongsang, a low-wooden bench; and a mom-and-pop store that existed in every neighbor.

The mechanism behind ondol was a direct heat transfer from a fireplace to underfloor. The western heating system has replaced the traditional device during the course of urbanization in the modern times, yet ondol remains one of the most readily used heating systems in Korea since the 11th century A.D. to the present. The costly and lengthy construction period requiring professional technique often made it difficult to easily adopt ondol. Korean’s preference for underfloor heating system instead brought about a cheaper and more convenient system as a replacement, which involved placing electric cables or hydronic pipes under cement floors. Although this method is not a contemporary variant of ondol, this system became widely popular as another example of a thermal flooring system.  

Pyeongsang is an outdoor public property built by an individual or a residential community to be used as communal furniture for the sake of convenience and communication. Although these are no longer easy to sight in large cities, they still exist in residential towns on the outskirts of the cities. A rural fishing or farming villages would often place a pyeongsang next to a large tree. Not only offering a shelter from the sun and rain, this placement affirms the symbolic stance of a pyeongsang as a place for the residents to rest and socialize.

Many people are familiar with a mom-and-pop store as it exists nearly everywhere. The store would stock daily necessities and general items. Often run by a local resident, the store functions as a place of information exchange and social gathering over a drink or two.

This work is irregular, incomplete, intimate, and voluntary. The work declines to pursue a state of completeness, to entail logical validity to induce sympathy, and to offer a common idea to convince the majority. The work continues to defy any definition set by a collective and instead, values incompleteness. There is no place for long-standing hierarchical systems or ideas based on collective decision or agreement in this work. Therefore, the work is devoid of a collective agreement and consists only that of an individual’s voluntary expressions.

An electric ondol is an incomplete, poor emulation of the original. Despite its limited functionality that depends on electricity supply, it still remains a valuable device for many. Initially adopted for the use in residential structures, the electric ondol is now widely used in restaurants, indoor gyms, commercial facilities, and temporary performance or theatrical stages.

Pyeongsang gets built by an individual but often functions as a public property. Strictly speaking, it is a private property that could be shared by everyone. One could use it as a place to nap, socialize, eat, or drink. Students can use the space to read while some could be folding laundry. A pyeongsang is a communal furniture and a public space.

A mom-and-pop store in Korea loosely and simultaneously functions as a convenience store, a kiosk, a newsstand, a snack bar, a pub, a grocery, a hardware store, and a lounge. It exists as a place to buy something—not necessarily an exchange between a product and money but that of information, emotions, returning favors, kindness, affection, and loneliness. If one was ever out of money, payment could be postponed or the exchange could be made with another substitute. In such ways, despite the limited physical space, the small store is an emblem of abundance with infinite possibilities.

This work is at the antipode of the long-standing traditions of collectively constructed agreements, concepts, faiths, or ideologies. The work is like a small store with no particular raison d'être; trivial conversation; an unsummarizable subject; a complex thought that cannot be defined in a sentence; a very long song with no specific score that is engraved in the mind of the people wherein everyone could sing along; a company with a top and a bottom but no hierarchy; a military armed with shovels and hammers where order is delivered in songs; a compliment made without empty rhetoric; and a poem where letters appear like drawings. When the 21st century humanity is engrossed in the idea of immorality, happiness, and sacredness, this work seeks joy from what is not immortal, happiness, or sacred.
이 작품은 한국의 전통 가옥에 적용된 온돌이라는 난방장치와 평상(平牀)이라는 가구, 그리고 동네마다 있던 구멍가게에 대한 것이다.

온돌은 아궁이에서 불을 때면 화기(火氣)가 방밑을 지나 방바닥 전체를 덥게 하는 난방장치를 말한다. 기원 후 11세기부터 현재까지 한국에서 주로 쓰고 있는 난방 형태이나 근대 이후 삶의 형태가 도시화됨에 따라 서구적 난방 형태로 대체되었다. 온돌은 제작상 비용이 많이 들고, 공사 기간이 길며, 전문적 기술이 요구되기 때문에 흔하게 설치하기 어려워졌다. 그러나 여전히 바닥 난방을 좋아하는 한국인들은 이 난방을 유지하기 위해 저렴하고 시공이 쉬운 방법을 고안해 내었는데, 그것은 단순히 시멘트 바닥에 전기 코일이나 온수 파이프를 매입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온돌이 현대화된 것은 아니지만 바닥이 따뜻해 진다는 점 하나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환영 받았다.

평상은 실내가 아닌 실외에 있는 공공재(公共財)이다. 특정인이나 공적 기관에서 제공하는 가구(家具)가 아니라 개인 또는 주거 공동체에서 편의와 소통을 위해 만든 공동의 가구이다. 현재 한국의 도심에서는 발견하기 어렵지만, 도시의 변두리나 거주 중심의 마을에서는 볼 수 있다. 농촌이나 어촌에서 흔히 볼 수 있으며 일반적으로 큰 나무 옆에 평상을 놓는다. 그늘을 만들고 비를 피할 수 있는 기능성 때문에 큰 나무 옆에 놓기도 하지만 마을의 중심에서 쉬거나 대화한다는 상징성이 더 크게 작용한다.  

구멍가게는 어디에나 있어 누구나 잘 알고 있다. 구멍가게에서는 생필품은 물론, 온갖 잡화를 판매한다. 구멍가게의 주인은 외지인이 아니라 대부분 그 동네의 주민이다. 이 곳을 찾는 마을 주민들은 정보를 교환하고, 술 한잔을 기울이며 친목을 도모한다.

이 작품은 불규칙적이고 미완성이며 개인적이고 임의적이다. 이 작품은 완전함을 추구해야 한다던가, 공감을 불러 일으키기 위해 타당한 논리성이 내포되어야 하거나, 다수를 설득할 수 있는 공통의 개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거부한다. 이 작품은 집단에 의한 정의를 거부하며 불완전성에 대한 찬미로 가득하다. 또한 오랜 동안 우리가 집단적으로 형성한 체계나 집단의 동의 하에 이루어 낸 개념은 이 작품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작품은 집단적 합의에 의한 것은 없고, 개인에 의한 자의적 표현만 있다.

전기로 작동되는 온돌이라는 바닥 난방은 완전하지 못한 어설픈 모방이다. 그러나 원본이라는 전통적 난방 시스템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전기가 끊기면 작동되지 않는 결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에게 훌륭한 도구적 장치이다. 이 장치는 주택에만 적용되던 것에서 식당, 실내체육관, 여러 종류의 상업공간, 나아가 임시 가설무대에도 설치된다.

평상은 개인이 제작하여 공공재로서 기능한다. 개인 소유물이지만 누구나 사용한다. 여기에서는 잠을 자도 되고, 대화를 해도 되고, 식사를 해도 되고, 맥주 한잔을 해도 된다. 학생들은 책을 읽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평상 위에서 마른 빨래를 개기도 한다. 평상은 공동(共同)의 가구이면서 공동의 방이다.

한국에서 구멍가게는 편의점, 가판대, 매점, 식료품점, 철물점, 스낵 바, 주점, 휴게실의 기능과 개념이 모여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무엇을 구입하는 것이 주된 목적인데, 딱히 물건과 돈을 교환하는 곳이라기 보다는 정보, 감정, 답례, 은혜, 정, 외로움 등을 교환한다. 돈은 나중에 지불해도 되고, 돈이 없다면 다른 것으로 교환하거나 대체할 수 있다. 이 곳은 조그만 공간이지만 굉장히 많은 것이 존재하는 무한한 가능성의 공간이다.

이 작품은 집단적으로 합의를 이룬 것, 집단에 의해 구축된 개념, 긴 역사를 통해 이루어진 집단적 신념이나 이념등과 같은 것들의 대척점에 있다. 이 작품은 구멍가게 같이 존재의 목적이 명확하지 않은 것, 실없는 대화, 요약할 수 없는 주제, 한 마디로 정의 할 수 없는 복잡한 생각, 악보가 존재한 적이 없으나 언제나 기억나서 같이 부를 수 있는 아주 긴 노래, 위 아래는 있으나 서열이 없는 회사, 삽과 망치로 무장하고 노래로 명령하는 군대, 수식어 없이 표현하는 칭찬, 글자가 그림처럼 보이는 시(詩)와 같은 것이다.

21세기의 인류가 불멸, 행복, 신성과 같은 것을 몰두할 때, 이 작품은 불멸이 아닌 것, 행복이 아닌 것, 신성이 아닌 것에서 기쁨을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