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litics of Materials


재료의 정치성




Gimhongsok
김홍석
Art is political. Because art is political, the standard of beauty is always changing. New standards are established by the times and those who live in it. The beauty of yesterday can be eliminated from the standards of today, and the beauty of “these” can be dismantled by “those”. The politics of a work of art is determined by the form, size, color and material, but material is tangible and empirical as it is what ultimately makes up a work.

There was a time when artworks were made of so-called “pure materials”, but most contemporary artworks are made of “commodities”. If an artist wishes to use high-quality wood such as Douglas fir, he or she must buy the material; if an artist wishes to cover a skull with diamonds, he or she must purchase the skull and diamonds. The idea of a “pure material” is now void. In this era, the word “pure” has become weak and corrupted from a political perspective. A commodity is very political. There was a time when rosewood had stronger physical properties than plywood, but now plywood symbolizes stronger artistic properties than rosewood. We intuitively accept this fact over logical explanation. As such, art is honest but fickle. 

Balloons are a material that can be easily purchased anywhere. At the same time, balloons are political because they are inexpensive, common, lightweight, chemical, and replaceable. If you list the antonyms of the aforementioned words, they are expensive, rare, heavy, pure and permanent. Compared to the former, the latter is modern, masculine, authoritative, verbal and compulsive. A contemporary artist who chooses a material corresponding to the latter is naïve, ignorant and pitiful.

Balloon sculptures made of bronze are nonmaterial. Sounds speculative, but true. This is because the act of blowing a balloon in shape and processing it into bronze is not to ‘commemorate’ the balloon, but to ‘commemorate’ the breath. A balloon filled with the breath from human lungs, not air, is commemorative in itself. However, unless the balloon itself, as opposed to the memory of the moment, is to be commemorated, the balloon is destined to shrink or burst. A change in material from rubber to bronze is tremendous, but as we reflect on this process we can celebrate the memory of our own breath rather than the politics caused by the change in materials. This is my hope, as an artist.

Not all materials are commodities. Materials such as glass, ceramics and bronze are not commodities. These materials are close to, or perfectly 'pure materials’. Thus, they are premodern. Who would be in awe by the sight of a bronze or ceramic sculpture now? These materials have completed their duty of the times from a political perspective. However, if the focus becomes the labor of production rather than the politics of material, a bronze or ceramic sculpture can be viewed again as political. If affective labor centered on non-materiality is the interest of this era, manual labor has been overlooked and alienated from the language of our times. If we regard manual labor, which occupied most of the 20th century, as a glorious past, the capitalists who produce capital via manual labor would be considered living fossils. Now, I do not regard glass, ceramics, or bronze as just materials. I pay attention to the production process behind the material. Production is manual labor. The body is political and so is labor. These two ideas, in an infinite loop like the Mobius strip, are very appropriate political materials in art.  



Translation: Christine Chung 
미술은 정치적이다. 미술이 정치적이기 때문에 아름다움의 기준은 언제나 새롭게 생성된다. 새로운 기준은 시대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 의해 정립된다. 어제의 아름다움이 오늘의 기준에서 소거되기도 하고, ‘이들’에 의한 아름다움이 ‘저들’에 의해 해체되기도 한다. 미술작품에서 정치성은 형태, 크기, 색, 재료에 의해 결정되지만, 재료는 무엇보다 작품을 이루고 있는 물질적 실재이기 때문에 유물론적이고 경험론적이다.  

미술 작품이 소위 ‘순수한 재료’라 불리는 것으로 만들어졌던 시대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현대미술 작품은 ‘상품’으로 이루어진다. 어느 미술가가 미송(美松, Douglas fir)과 같은 고급목재로 작품을 만들고자 한다면 이를 구입해야 작품으로 만들 수 있고, 해골을 다이아몬드로 뒤덮고자 한다면 해골과 다이아몬드를 구입해야 한다. ‘순수한 재료’는 이제 사라졌다. 이 시대에 ‘순수함’이란 단어가 주는 의미는 정치적 관점으로 볼 때 나약하고 타락했다. 상품은 매우 정치적이다. 자단(紫檀, Rosewood)이 합판보다 강한 물성을 나타내던 시대가 있었다면, 지금은 합판이 자단보다 훨씬 강력한 미술적 물성을 상징한다. 우리는 그 이유에 대한 논리적 설명에 앞서 이를 감각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미술은 정직하면서 변덕스럽다.    

풍선은 어디서나 쉽게 구입할 수 있는 재료다. 동시에 풍선은 정치적 재료다. 값싸고, 흔하고, 가볍고, 화학적이고, 일회성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수식어와 정반대의 단어를 나열한다면, 비싸고, 희귀하고, 무겁고, 순수하고, 영구적이다. 전자에 비해 후자는 근대적, 남성적, 권위적, 언어적, 강박적이다. 후자에 상응하는 의미를 지닌 재료를 선택하는 현대미술가는 순진하고, 무지하고, 측은하다.  

청동으로 만들어진 풍선조각은 비물질적이다. 사변적으로 들리지만 사실이다. 사람이 숨을 불어넣어 형태화된 풍선을 청동으로 가공하는 행위는 풍선을 ‘기념비화’하는 것이 아니라, 숨을 ‘기념비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공기가 아닌 사람의 폐에서 나온 숨이 담긴 고무풍선은 그 자체로 기념비적이다. 그러나 풍선 그 자체를, 다시 말해 물질이 아닌 순간의 기억으로 기념비화한다면 모를까, 풍선은 곧 바람이 새어 나가 오그라들거나 터질 운명이다. 숨을 영구히 보존하기 위해 청동으로 바꾼다면 고무가 청동으로 바뀌는 엄청난 변화가 생기지만, 우리는 이 과정을 보면서 재료의 변화에 의한 정치성보다는 자신의 숨에 대한 기억을 더 기념할 것이다. 이는 작가인 나의 바램이다.  

모든 미술작품의 재료가 상품인 것은 아니다. 유리, 도자기, 청동과 같은 재료는 상품이 아니다. 이 재료들은 ‘순수한 재료’에 가깝거나 ‘순수한 재료’ 그 자체다. 따라서 이 재료는 전근대적이다. 현 시대에 누가 청동조각과 세라믹조각에 경외심을 가질 수 있단 말인가? 이 재료는 정치적으로 볼 때 시대적 소임을 마쳤다. 그러나 미술의 정치적 유효성에 견주어 재료의 정치성보다는 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노동에 초점을 맞춘다면 청동조각과 세라믹조각은 또다시 정치적 재료로 등장하게 된다. 비물질재를 중심으로 한 정동(情動, affect)노동이 이 시대의 관심이라면 육체노동은 시대언어의 중심에서 벗어난 소외의 관념이다. 20세기라는 한 세기를 점유했던 육체에 의한 생산언어를 과거의 영광이나 역사의 침전물로 여긴다면 지금도 육체노동을 통해 자본을 생산하는 유물론자들은 살아있는 화석일 것이다. 이제 나는 유리, 도자기, 청동을 재료 그 자체로 대하지 않는다. 그 재료가 현존하게 하는 생산과정에 주목한다. 생산과정은 육체노동이다. 육체는 정치적이고 노동도 정치적이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끊임없이 순환하는 이 두 가지 개념은 미술에서 매우 적절한 정치적 재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