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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의 부조리를 픽션으로 고발하는 작가 김홍석

이성희
월간 <아트인컬처> 기자




김홍석은 사석에서 여러 번 만난 적이 있었다. 유쾌한 듯 살짝 엇나가는 유머를 가진 작가로 항상 궁금증을 갖고 있었으나, 작가도 작품도 잡힐 듯 말 듯 알쏭달쏭하기만 했었다. 그는 정치적 문화적 현상들을 유머러스하게 전복시키거나, 번역의 문제, 다른 작가 작품을 그대로 가져오는 차용의 문제 등을 다뤄 왔다. 2008년 국제갤러리 열린 개인전 <밖으로 들어가기>전에서 사회의 소수자로 여겨지는 낯선 사람들과 소통을 위한 단서를 제시한다. 성고문을 당한 여인의 독백, 외국인 노동자의 횡설수설 인터뷰, 작가의 마스코트처럼 여겨지는, 소파에 길게 누운 ‘버니’ 인형은 외견상 귀엽지만 그 속은 안타까운 현실 “나는 북에서 탈출한 불법체류자이기 때문에 이렇게 토끼 탈을 쓰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 속삭인다.


민주화의 갈등에서 소수 민족의 차별로

다소 불편한 그 전시장에서 과연 관람객들은 어떤 느낌을 가졌을까. 그리고 작가의 생각은 어떠했을까. 김홍석이 낯선 사람들과의 소통에 관심을 두게 된 이유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대화는 꽤 오래 전 작가의 기억으로부터 시작됐다. 80년대 초반 대학 시절을 보낸 작가는 한쪽에서는 학생들이 ‘독재타도’를 외치다 구타 당하며 연행되는 현장을 목격하는 한편 밖에서 바라 보는 외국인 마냥 현실 문제에 관심을 두지 않는 평온한 미술대학의 분위기를 기억했다. 이러한 초현실적인 풍경은 강의실 밖의 현실과는 무관하게 수업을 듣던 학생들의 순종적 태도로 인해 커다란 대비를 자아냈고 당시의 상황이 흑과 백중 하나만을 선택해야 하는 부담만큼 이러한 대비는 흑과 백의 선택보다 더 극단적인 모순으로 보여졌다.
“당시 대학생들은 노동자들이 인권적 측면에서 불합리한 상황에 있다고 판단했고 그들의 의식을 일깨워 준다는 목적으로 위장 취업을 비밀리에 진행했습니다. 위장 취업을 통해 노동자들을 교육하고자 했던 거지요. 사회주의의 영향 아래 노동자들이 어떻게 하면 인권 및 계급적 평등을 얻을 수 있고, 나아가 민주화된 사회를 쟁취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재야 및 학원가의 중요 이슈였고, 해결을 위한 행동 강령 중에서 ‘교육’이 중요한 방법론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위장 취업과 노동자들의 의식화 ‘교육’은 그 목적과 방법이 매우 올바름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의 의식적 개혁은 여전히 빈약하고 인권적으로 취약하며 그들의 정신적 버팀목은 그들 스스로가 아니라 타인(교육하려는 자)이라는 모순적 상황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즉 교육하는 사람들만이(당시에는 학생들과 재야 지식인들) 결과에 대해 비평하고, 개선하고자 하고, 다시 행동할 뿐 노동자들은 항상 그 자리에 있는 별개의 대상이 되었고 의식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자립할 수 없는 미숙아로만 결론지어질 뿐이었다는 말입니다. 즉, 이들은 항상 타인에게 의지해야 하는 결여된 주체이고 우리는 이러한 불가능함과 모순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졸업 후 그는 독일로 유학의 길을 떠났고 당시의 유학생들이 대부분 그러했듯이 한국의 정치적 상황에 대한 실망과 이념적 대결로부터의 탈출이었다. 그러나 그가 독일에서 부닥치게 된 것은 순수 학문에 대한 충격이 아니라 인종 차별에 의한 자아 상실이었다. 1990년대 독일의 사회 문제는 터키, 아랍인들과 같은 이주민들로 인해 발생한 취업난과 인종적 편견이었다. 1970년대 독일 경제의 부흥으로 정책적으로 유입한 터키 근로자들은 후에 산업화 과정으로 일자리를 잃고 심각한 사회 문제를 일으켰다. 여기서 작가는 “나라는 존재도 그들 터키 이주자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인종 차별에 봉착했다. 아시아인에 대한 기본적 이해가 부족했던 당시 독일에서 그는 돌을 맞기도 하고, 굉장히 경멸적인 태도를 경험했다고 언급했다. 한국에서는 민주화 과정에서 같은 민족끼리 고민했던 문제가, 어느새 하등 민족으로서 인종적 멸시를 받는 상황으로, 너무나 복잡한 단계로 나아갔던 것이다. 그는 과연 유토피아적 접근 방법이 존재할 수 있는 지에 대한 의문과 인종 문제, 국가간의 관계, 그리고 관념적인 문제가 현실적으로 어떻게 적용 되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고, 그것은 현재까지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해석 지점이 된다.


미술가이자 코디네이터, 그리고 콜라보레이터

그는 초기 작업에서 콜라보레이션의 방식으로 작품을 풀어나갔다. 독일에서 ‘이방인’의 삶을 체험하면서 김홍석은 동양인이자 이방인이 국제인이자 손님으로서 변모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고 협업체계를 통해 그 사회에 직접 참여하려는 시도를 시작했다. 그는 적은 돈으로 작업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대신, 패션가들에게 옷을 후원 받고 은행가들을 찾아가는 등 ‘협업’의 형태를 실험했다. 한 미술관 전시에서 3미터 트랩 위에 실제 ATM 기계를 설치하겠다는 계획으로 은행 지점장을 찾아가 3억 예산의 후원을 받아내기도 했다. 이 계획은 높은 트랩을 공항에서 빌려서 시내로 들어오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무산됐지만 작가는 소비사회 구조 속에서 미술작품의 역할을 규정하고자 한 개념을 실천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는 1997년 동아갤러리에서 열린 해외 청년 작가전 참여 차 귀국했는데, 때마침 IMF가 터져서 한국에 머물게 됐다. 이 시기가 IMF로 귀국한 유학생들이 활발한 활동을 시작해서 한국 대안공간의 역사가 꽃폈던 그때다. 대안공간의 생성은 당시의 한국의 미술계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으로 당시에 상당히 많은 수의 전시와 작품들은 매우 진보적인 실험을 통해 활기가 넘쳐 났다. 당시 김홍석은 파티를 기획하고, 요리를 통해 사람들과 만났고, 다른 한편으론 대학에서 컨테이너를 설치하여 (COCA-Container of Contemporary Art, 1998) 학생들의 작품을 외부에 소개하는 일을 진행했다.
한편 그는 자신의 개인전에 다른 작가들의 작품으로 채워 넣은 실험적 시도(Retro Bistro, Space Loop, 2000)를 한 후 작가 김소라와 본격적인 협업 작품을 시작했다. 그들의 작업에 보이는 주된 개념은 ‘Post Production’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작품에 등장을 하기도 하고 작품에 개입된 사람들과 또다시 협업함으로써 순환 구조적 이야기가 발생하는 것이 특징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협업의 목적은 현대 사회의 시스템의 의미를 무력화시키는 일이라고 언급했다. 예를 들어 개인의 거실의 모든 물품을 공적인 장소로 이동시킨 일<Li(:)ving room>2000, 스타디움의 의미를 풍경으로 전복시킨 일<Landscape>(2002), 돈이 아닌 사물을 예치할 수 있는 은행 <Capital Plus Credit Union>(2002), 중고 전자 제품으로 이글루를 만든 일(2001)로써 실제 사회에서 기능하는 공간을 다른 기능적 의미로 전환시켰고, 경우에 따라서는 그 의미가 아예 소멸되기도 했다. 특히 그가 주목했던 작품의 조건은 작품이 생산되는 장소와 전시 장소가 동일할 것과 전시가 종료되었을 때 설치작품은 그 현장에서 사라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와 김소라는 그들의 전시 장소가 제작소이자, 작품이 사라지는 소멸의 장소였고, 이로 인해 그들은 자신들이 완성한 작품을 오프닝 당일에만 보고 영원히 볼 수 없는 무소유의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결국 이들의 작품은 사진적 기록으로만 존재하게 되었고 무장소無場所, 비물질, 유목상황적 미술 작품을 구현했다.


픽션은 가짜가 아니다

김홍석은 자신의 개인적 관심사를 보다 가볍고, 재미있게 보여주는 방식을 통해 사회 시스템을 간접적으로 냉소하고 비판한다. 이러한 작품 경향은 ‘픽션’의 형태로 발전되며 대부분 ‘글쓰기’로부터 출발한다. <Thump>(1999), <Magic Sword of MMCCXCVII>(1999), <Shake sphere>(2000)의 텍스트들은 초현실적이고 비논리적이고 허무맹랑한 이야기들이다. 앞의 두 작품은 한국어로 먼저 쓰여졌고 그 다음은 작품이 소개되는 나라의 말로 번역되며, 다음 단계는 원본이 아닌 전 단계의 번역을 바탕으로 번역되어 여러 단계를 거쳐 다시 한국어로 번역된 글은 처음 원본과 다른 맥락에서 읽혀진다.
작가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어로 쓰여진 세계사, 한국어로 번역된 외국 문학, 서구에서 제작된 TV 드라마, 외국어 교본들에 영감을 받는다. 나는 낯선 곳의 여행을 두려워한다. 따라서 간접적인 체험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일에 익숙하다. 타인에 의해 해석된 텍스트들은 내게 즐거움을 주는데 나는 이를 다시 해석함으로써 마치 더 새로운 것을 제시할 수 있는 듯한 가능성을 발견한다. 이는 얼핏 기생하는 일로 보이지만 주체에 대해 종속되는 일도, 주체를 변형시키는 일도 아니기 때문에 나는 스스로 완전한 여행을 하고 있다는 착각을 하곤 한다. 일종의 메타 언어 놀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힌 바 있다.
글쓰기 작업의 언어 유희는 영상, 퍼포먼스, 오브제 등으로 다양화되는데, 이때부터 작가는 모든 상황을 직접 조작한다. 김홍석의 국가 부르기 작업 <G5>(2004)는 실제 G8 국가들 가운데서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일본의 국가를 한국어로 번역하며 5명의 한국인에게 노래를 부르게 한 영상 작업이다


하얀 ‘방’에서 하나의 이야기로 조합되는 개별 작품들

김홍석은 2006년 광주비엔날레에서 3000와트의 아주 밝은 조명과 하얀색 바닥과 천정으로 이루어진 방에 비디오, 사진, 회화, 오브제를 설치했다. 그는 이전에 제작했던 이 작품들을 한 곳에 모아 놓고 하나의 이야기로써 조합했는데, 이러한 조합은 벽면과 바닥에 쓴 텍스트들로 인해 새로운 이야기로 탄생한다. 이미 완성된 그의 이전 작품들은 하얀 방에서 새로운 의미로써 기능하는데, 이는 작가가 언급하기를 “이미 완결된 개별 작품도 다른 카테고리에 포함시켰을 때 또 다른 해석이 가능할 수 있다”는 실험이었다.
김홍석은 개인전은 물론이고, 그룹전이라도 자신에게 하나의 공간이 주어지게 되는 상황에서는 자신의 작품을 상황에 맞게 조합을 하여 매번 다른 의미의 공간으로 연출했다. 이러한 ‘방’시리즈는 이미 8개의 작품으로 완성되었고, 점차 그는 구체적 의미의 공간(방)에서 추상적 의미의 공간(방)으로 개념의 변화를 이어가고 있다.
김홍석은 자신의 퍼포먼스 작품을 진행하던 중 몇 가지 윤리적인 문제를 발견하게 된다. 김홍석은 한국에 정착한 90년대 후반부터 한국의 미술계에서 발견되었던 참여적 미술과 미술의 행동주의에 대해 커다란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후기민중미술도 이에 포함된다. 이미 서구에서도 제시되었던 문제들, 즉 행동주의 미술의 비판과 참여미술의 정치적 포지셔닝에 대한 비판적 견해에 동감하던 그는 한국에서도 동일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예를 들어, 철거지역에 대한 지형도 그리기, 해고 노동자들과의 인터뷰, 소외 지역 어린이들을 위한 도서관 건립 등은 미술의 사회 참여를 극단적으로 표현한 것인데 이때 미술가들의 소통 방법이 박애와 자선이던 사회 참여에 대한 미술적 실험이던 매우 무분별한 접근이자 공격이라고 판단한 듯 하다. 이러한 이유로 김홍석은 자신의 퍼포먼스에 참여하는 이들에게 돈을 지급했고 이를 공론화하거나 작품에 드러냈다. 이것은 돈을 지불함으로 해서 자신이 윤리적인 문제에서 벗어났다는 의미가 아니라, 돈거래를 통해 윤리적 관계가 무엇인지 제시하고자 했던 것이다. 관람객은 미술가가 작품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돈을 지급했다는 대목에서 오히려 불편한 감정을 갖게 되지만 이 또한 작가의 명백한 의도로 작용한다.
<Ich bin ein Berliner>(2006)이라는 영상작업은 1963년 미국 전 대통령이었던 존 에프 케네디의 독일에서의 연설을 한국어로 번역하여 전라남도 광주 어느 초등학교 학생이 이를 그대로 한국어로 연설하는 것을 영상으로 기록한 것이다. 내용은 이념적 대결이 극한 상황으로 전개되었던 당시의 국제적 상황을 시대와 지역이 다른 현재의 상황으로 변화시켰을 때 그 의미가 변역 과정에서 희석되고 일상적 맥락으로 대중화됨을 이야기하지만, 중요한 부분은 여기서 등장한 어린이의 퍼포먼스 때의 일이다. 광주비엔날레 오프닝 당일, 비엔날레 측의 요청에 의해 이 어린이는 다시 한번 연설을 하게 되었다. 그의 아버지는 이미 유명한 웅변가로서 어린이가 웅변을 하는 내내 그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오프닝 당일 이 어린이가 웅변을 하고 있을 때 한 중년의 여성이 이 퍼포먼스를 기획한 작가를 찾았고, 마침내 그녀는 김홍석에게 다가가 어린이를 학대하는 행위를 멈춰달라고 강력하게 요청했다. 김홍석은 웅변을 중단시켰고 이로 인해 그는 이 연설에 대한 어떠한 미술적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 (실제 작품은 미리 제작된 것으로, 어린이가 암기하지 않은 상태에서 더빙을 통해 완성된 가짜의 퍼포먼스였다.) 여기서 문제는 김홍석이 일부러 어린이를 섭외했다는 점에 있다. 어린이는 작가가 의도한 작품의 내용을 이해할 수 없는 미숙하고 무방비한 존재였고 따라서 이러한 만남에 의해 완성된 작품에는 심각한 윤리적 문제가 있다고 김홍석은 판단했던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제시하게 위해 실제로 어린이를 섭외하는-부모의 강력한 동의가 있었다고 하더라도-미술적 행위는 잘못된 것이고, 미술가들로부터 무수히 생산된 참여적 미술이 그러한 함정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차용과 윤리

관람객과 작품이 충돌하는 문제들 때문에 그는 마네킹에 인형 옷을 입히고 마치 진짜 사람이 퍼포먼스를 하는 듯한 퍼포먼스를 기획했다. <브레멘 악대(The Brementown Musicians)>(2006)가 그것이다. 여기서 작가가 바닥에 기술한 텍스트(일종의 안내문)는 멕시코 노동자가 작가로부터 돈을 받고 일정 기간 동안 퍼포먼스를 한다는 거짓된 정보였다. 이 작품은 멕시코 출신 작가인 산티아고 시에라(Santiago Sierra)의 작품을 차용한 것으로 실제 사람들을 조정하고 그들의 인격이 무력화되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한 작가를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이후 그는 가짜의 퍼포먼스를 연이어 발표한다
퍼포먼스에서 발견된 윤리적 충돌은 사람들간의 관점과 태도에 의한 것이라면, 전시에 대한 출판물에서는 또 다른 윤리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김홍석은 자신의 경험을 말하면서 자신은 작품을 실제로 본 것보다 카탈로그를 통해 접한 것이 수십 배 많다면서 카탈로그는 단순한 정보 전달 및 기록물이 아니라 하나의 독립된 주체라고 말한다. 카탈로그 속의 작품 이미지는 실제 외형과 사진적 기록 그리고 출판물이라는 ‘세 가지의 얼굴을 가진 하나’이며 그 어느 것이 진짜인지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 알 수가 없게 되었다고 했다. 이로 인해 김홍석은 카탈로그 속의 이미지를 사진으로 다시 기록하거나 유화로 다시 재현한 것은 타작품에 대한 복제가 아닌 새로운 주체라고 정의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연작은 2005년 카이스갤러리 개인전 <Neighbor’s Wife>에서 처음 소개했으며, 여기서 제목이 ‘READ’인 것은 이미지의 원래 출처를 명시하기 위함이었다. ‘참조’와 ‘차용’은 그의 작업에서 지속되어 온 방식이지만 작가는 ‘READ’에서 그것을 극단까지 밀고 나간다.


우리가 진정 그들과 소통할 수 있는가

광주비엔날레에서 선보인 비디오 작품 중 <The Talk>(2004)는 번역과 소통에 관한 것으로, 이 작품에서 작가 자신이 생각하는 ‘교육’과 ‘윤리’의 방향을 직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이 작품에서는 외국인 노동자를 가장한 연극 배우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언어로 작가와 통역자에게 자신의 권리에 대해 설명하는데, 자막은 영어로써 그의 대화와는 무관한 내용의 이야기이다. 카탈로그에 실려 있는 텍스트에는 통역자가 번역한 내용이 실려 있는데, 여기에서 작가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 그 중 일부를 발췌한다.
“저는 한국 외국인 노동자 센터의 설립 목적과 그 의도에 대해 가끔 의문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한국의 노동법을 모르고 심지어 실생활에서 겪다가 발생하는 여러 가지 사소한 법적 문제에 대해서도 잘 모릅니다. 의료 혜택도 저희에겐 해당되지 않는 상황에서 우리는 이 단체에 심리적으로 상당히 의지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때 우리는 사회적 약자라고 불릴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어린이도 아닌 정말 보호대상자로 전락해버립니다. 저희를 법적으로나 신체적으로 도와주시는 분께 정말 죄송하지만 실제 그 분들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모습은 마치 정신 박약이나 신체 불구자를 대하는 것과 별반 차이를 느끼지 못합니다.”
작가가 조작한 이 리얼리티극은 결국 ‘소통’의 불가능함을 말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작품을 통해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소통’이다. 소통이라는 단어가 미술의 한 용어, 유행처럼 된 마당에 식상하다 할 수 있겠지만, 그가 말하는 소통은 “나와 모르는 사람들과 사귀는 일, 이웃과 사귀는 일, 자신이 이방인이 되는 일에 직면할 때 ‘고독’을 진정으로 인정하는 방법”에 관한 것이다. 이러한 소통의 중심에 ‘교육’과 ‘윤리’라는 문제 제시가 있다. 이를 통해 진정한 자유와 평등을 얻고자 하는 것, 작가 김홍석이 예술을 통해 실천하고 바라는 일이다.